[주장] 국법질서 훼손한 이재용, 정의의 심판 있어야

전성인 2024. 1.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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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1심 선고를 앞두고

[전성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3년 11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 7월, 이재용은 왜 워렌 버핏을 만나러 갔나?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간 합병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5년 6월 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당시)과 미래전략실은 골드만삭스를 통해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회사의 워렌 버핏 회장에게 모종의 제안을 한다. 삼성생명을 분할하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재조합할 때 문제가 되는 삼성전자 주식을 버크셔 해서웨이가 7년 내지 10년 간 보유하면서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줄 수 있는가가 핵심이었다. 이 전 부회장은 이런 제안에 그치지 않고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간의 합병일인 2015년 7월 17일을 불과 6일 앞둔 시점인 동월 11일에 미국 아이다호주까지 날아가서 워렌 버핏을 만났다.

이 구상은 최종적으로 금융위원회가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금융지주회사 설립안을 반려하면서 수포로 돌아갔지만,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간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의 분식회계가 결코 개별 회사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들 사건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고 그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공통주제는 바로 '이재용 전 부회장의 승계'였다. 위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팩트는 승계 사건이 이재용 전 부회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일부 부하직원들이 멋대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이 전 부회장이 인지하고, 승인하고, 때로는 본인이 직접 행위에 가담하면서 이루어진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법행위 시점에서 햇수로 10년이 흐른 지금, 그 불법행위에 대한 첫 번째 사법적 판단이 예정되어 있다. 혐의는 우선 자본시장법 제178조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를 위반하여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해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한 것과 같은 법 제176조에 따라 "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를 위반하여 합병과 연관된 기업들의 주가를 부당하게 조종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39조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며,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모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 사실상의 이사로서 부당하게 합병 비율을 왜곡하여 구 삼성물산 주주에게 재산상 손실을 끼침으로써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재판장 박정제)가 오는 2월 5일 제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급성 심근경색, 아들 이재용의 선택은?

돌이켜 보면 이 전 부회장의 경영권 부당 승계와 관련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은 '설마'와 '맙소사'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황당하고 해괴한 일들이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공약들은 삼성생명이라는 금융회사를 통해 삼성전자라는 비금융회사를 지배하고, 또 구 삼성물산에서 삼성전자로, 그리고 삼성SDI를 거쳐 다시 구 삼성물산으로 빙글빙글 도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던 삼성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왜냐하면 향후 '경영권 승계'를 하려면 불가피하게 이 구조에 손을 대야 하는데, 이 경우 신규 순환출자가 나올 수 있고,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배가 크게 제약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4년 5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이재용 전 부회장에게 승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되었다.

이때 이재용 전 부회장에게는 2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나라의 법을 잘 지키며 그 범위 안에서 본인의 재산과 상속받은 세후 재산을 이용하여 삼성그룹의 일부 계열사의 주주로 남거나 이사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광명과 준법의 길이다. 그러나 검찰이 밝힌 여러 사실에 의하면, 이 전 부회장은 거짓과 은폐로 얼룩진 불법의 길을 선택했다.

각종 꼼수와 거짓이 난무한 삼성물산 불법합병, 정당화될 수 있나?

합병 비율을 제일모직에 유리하고 구 삼성물산에 불리한 제일모직 1주 대 구 삼성물산 주식 0.35주로 임의로 결정한 뒤, 두 회사의 가치평가를 맡은 삼정과 안진 회계법인에게 이 비율대로 기업가치 평가를 짜 맞출 것을 주문하고, 이를 부당합병에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합병 결의에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에는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 국가조직을 동원해서 압박했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자신이 지배하던 삼바의 콜옵션 부채를 고의로 누락하고, 합병 결의 후에는 콜옵션 부채를 부득이 반영할 경우 삼바가 자본잠식에 빠지는 점을 은폐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논의하다가 결국 회계방식을 부당하게 변경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전 부회장이나 미래전략실과의 관련성을 숨기기 위해 공장 바닥을 뜯고 그 안에 재경팀 공용 서버 등을 은폐하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제한된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의 꼼수와 거짓이 난무했다. 이것이 어찌 정당한 경제행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2024년 2월 5일, 재판부가 정의에 다가선 결정 내려야
 
▲ 시민사회단체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1심 선고, 이재용 엄벌 촉구”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사건 1심 선고에 대해 공정하고 엄정한 판결을 촉구했다.
ⓒ 유성호
 
지난 2017년 8월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설마'가 '와우'로 바뀐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최대 재벌의 총수에게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실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고작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구형할 수 있는 최소형량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또다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참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재판부가 검찰과 쿵짝을 맞춰서 '흘러간 옛노래'를 다시 틀지, 2017년 8월의 그날처럼 범죄의 중대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정의에 한 걸음 더 근접한 판결을 내릴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성인님은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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