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억 성폭행 배상금 폭탄'…트럼프에 한방 날린 80세 그녀
80세 여성이 77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8330만 달러(약 1113억원)의 손해 배상 평결을 받아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을 뜨겁게 달군 이 평결은 올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유력 후보인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 중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승소의 주인공인 E 진 캐럴은 뉴욕타임스(NYT)와 27일 인터뷰에서 "배상금의 한 푼도 낭비하지 않겠다"며 "선한 일을 하는데 쓸 작정"이라고 다짐했다.
캐럴이 트럼프를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초반이다. 그는 당시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였다. 패션잡지 엘르 미국판에 여성들의 고민 상담에 응해주는 '캐럴에게 물어봐(Ask E Jean)' 칼럼을 1993년부터 연재 중이었다. 이 칼럼은 2019년까지 장장 26년을 이어갔다. 끝낸 건 캐럴의 자의가 아니었다. 2019년 그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상대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소를 제기한 이후였다. 캐럴 측은 백악관의 압력 때문에 엘르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됐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당시 "나는 캐럴을 알지도 못한다"고 주장했고, "내 타입도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캐럴은 트럼프와 1990년대 여러 행사장에서 함께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여전히 "난 모른다"로 일관했다. 캐럴은 2019년 책을 내고 트럼프에 대한 싸움을 시작한다. 『남자들은 무엇에 필요한가(What Do We Need Men For?)』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그는 트럼프에게 당했다는 성추행의 전말을 이렇게 주장했다. 몇 차례 얼굴을 익힌 트럼프를 1995년 뉴욕의 유명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가 "여성에게 줄 선물 고르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속옷 가게로 갔다는 게 캐럴의 주장이다. 트럼프가 "한 번 입어보고 얘기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응하려 탈의실에 들어갔는데 트럼프가 갑자기 들이닥쳤다는 게 캐럴 측 주장이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책 판매고를 높이려는 전략" "내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대응했다.
트럼프의 부인이 이어지며 성폭행 형사 고소의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캐럴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번엔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취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주 6인의 남성, 3인의 여성 익명 배심원이 내린 평결이 나온 그 소송이다.
캐럴은 1943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발명가 아버지와 정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공화당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디애나대학교에 진학해 여학생회에서 활동했으며, 치어리더로도 이름을 날렸다. 63년엔 미스 인디애나대, 이듬해엔 전미 미스 치어리더로도 뽑혔다.
그런 그는 저널리스트의 꿈을 갖고 대학 졸업 후 뉴욕 행을 택했다. 그러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방송작가로 자리를 잡고, 에미상 후보에도 오른다. 이후 그는 엘르에 칼럼을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이 칼럼에서 그가 젊은 여성에게 주는 조언은 주로 "남성에 맞춰 삶을 설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였다. 엘르뿐 아니라 애틀랜틱, 배니티 페어 등의 미국 내 유수 잡지에 인기 칼럼을 쓰고, 책 『여자라서 힘든 것(Female Difficulties)』등을 출간한다. 그의 책은 그러나 남성을 배척하는 내용은 아니다. 남녀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되, 낮은 젠더 감수성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그는 트럼프를 정조준하는 책을 내면서 뉴욕 매거진 표지에도 등장한다.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표지엔 이런 헤드라인이 함께 나와 있다. "23년 전 트럼프가 버그도프 굿맨에서 나를 성폭행했을 때 바로 이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애초 트럼프를 유혹하기 위한 옷차림을 했다는 식의 비방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캐럴은 이제 트럼프에 맞서는 여성 투사의 대표주자가 됐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성들이여,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지 못하도록)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독려 문구를 대표 피드로 걸어놓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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