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차 엄정화 엄마 됐을땐 기가 찼다"…자식만 70명 둔 '국민 엄마'
‘국민’이라는 수식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김혜자·나문희·고두심·김해숙 등의 계보로 이어지는 ‘국민 엄마’. 요즘엔 그 타이틀을 배우 김미경(61)이 물려받았다.
엄마 역할을 맡은 지 어느덧 20년, 김미경의 작품 속 자식은 70명에 달한다. 지난 한 해만 해도 이보영(‘대행사’), 전도연(‘일타스캔들’), 엄정화(‘닥터 차정숙’), 신현빈(‘사랑한다고 말해줘’), 신혜선(‘웰컴투 삼달리’), 서인국(‘이재, 곧 죽습니다’)의 엄마 역을 맡았다.
" “국민 엄마요? 감사할 따름이지만 ‘아이고 내가 감히?’ 싶어 쑥스럽죠.” "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소속사에서 만난 김미경은 친숙한 ‘엄마 미소’를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면서 최근 그는 ‘국민 엄마’를 넘어 ‘K-엄마’로 발돋움했다. 직접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엔 한국어 댓글 뿐 아니라 외국어 댓글도 달린다. “요즘엔 브라질·칠레 쪽이 많은데, 생소한 나라에서도 찾아와 영어로 ‘엄마, 엄마’ 한다. 드라마 주인공도, 아이돌 스타도 아닌 저한테 이러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을 ‘워커홀릭’(일 중독자)이라고 소개한 김미경은 “대본을 읽고 공감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면 다 한다. (고정된) 이미지 걱정이나 역할의 비중은 딱히 따지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고 했다. “연기자면 연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이기 때문”이라면서다.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로 데뷔한 뒤 10년 넘게 연극 무대에 서면서 갖게 된 연기관이다.
" “22살 우연히 연극 무대에 오르며 시작한 배우 일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천직을 정말 잘 찾은 것 같아요.” " 말끝마다 배우란 직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지만, 그가 연기를 쉬었던 때도 있었다. 1995년 결혼과 함께 출산하면서다. “갓 태어난 딸아이를 보니 세상 그 무엇도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더라. 연극 일을 전부 접었었다”고 말했다.
송지나 작가의 권유로 30대 후반에 드라마 ‘카이스트’(SBS)로 방송 데뷔한 김미경은 “1~2시간씩 감정을 끌고 나가는 연극과 달리, 카메라 여러 대 앞에서 감정을 끊었다 이었다 반복하는 드라마 촬영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카이스트’ 이후 ‘대망’(SBS, 2002)이란 작품을 하면서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고 떠올렸다.
처음 엄마 역할을 제안받은 건 2004년 드라마 ‘햇빛 쏟아지다’(SBS)를 통해서다. 그가 막 40대에 들어섰을 때다. “40대 초반이면 엄청 젊은 나이다. 20대 배우(류승범)의 엄마를 하라니 망설여졌다”면서 “‘내 나이에 이걸 하면 어떡해?’보다는 ‘극 중 나이에 맞게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당시 감독님이 변장하면 된다고도 했고, 저 역시 엄마 연기가 처음이니 재미있을 것 같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이 드라마 이후 엄마 역할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닥터 차정숙’(JTBC)에선 실제 나이 차가 6살밖에 나지 않는 엄정화와 극 중 모녀 관계를 연기했다. “섭외 연락을 받고 처음엔 기가 찼다. 하지만 도전 의식도 생기고, 연기자가 나이 때문에 못한다? 굳이 (스스로) 한계를 둬야 하나 싶어서 수락했다”고 말했다. “'억울하지 않냐'는 등 주변에서 별소리를 다 들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어요. 연기자면 연기를 해야죠.”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강하고 따뜻한 존재. 이런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상(像)은 김미경의 연기를 통해 개인의 서사를 지닌 주체적 인물로 표현된다.
수많은 엄마 역할 중 기억나는 캐릭터가 있을까. 그는 “공통적으로 엄마의 서사를 품은 작품은 연기도 재미있어 기억에 남는다”면서 “엄마의 이야기가 있으면, 어떻게 진심을 전하고 다채롭게 표현할지 많은 생각을 하고 또 준비한다”고 했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더라도 어떤 성향의 엄마인지는 작품 속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매회 찍을 때마다 다른 인물인 것처럼 캐릭터가 분명치 않았던 경우가 과거엔 꽤 있었다”고 덧붙였다.
딸의 파혼을 맞닥뜨린 ‘또 오해영’(tvN, 2016), 애틋한 모녀 관계를 그려낸 ‘고백부부’(KBS, 2017)와 함께 최근 종영한 ‘웰컴투 삼달리’(JTBC)는 그가 재미있게 연기했다고 꼽은 작품이다. '웰컴투 삼달리'에서 그가 맡은 세 자매의 엄마, 고미자는 20년간 물질을 해 온 해녀 회장이기도 하다. 평소 취미로 스킨스쿠버를 한다는 김미경은 “평소 물을 좋아하는데 드라마 덕분에 원 없이 물속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면서 “세 딸, 해녀들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 하듯 연기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연기를 묻자 “늘 엄마 역할만 했으니 극단적인 캐릭터를 좀 해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토바이 타고 드럼 치고, 평소 굉장히 활달한 편이에요. 몸이 따라줄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이나 장르물도 해보고 싶네요.”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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