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發 중국 칩 인해전술’…칩 워 저자 “반도체도 태양광처럼”

심서현 2024. 1. 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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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의 SMIC 공장 앞에 게양된 중국과 미국 국기. 연합뉴스


‘반도체 인해전술이 온다.’
전 세계 정치·경제가 반도체 공급망을 중심으로 재편될 거라 예언한 『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학 교수의 새로운 경고다. 중국산 태양광 패널의 저가 공세로 미국·유럽 업체들이 줄도산한 사태가, 저가 반도체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中 반도체, 공급과잉에도 증산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칩 시장 잠식을 대비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크리스 밀러 교수 기고를 게재했다. 밀러 교수는 이 글에서 최근 중국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SMIC의 CEO가 “반도체 글로벌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설비 투자(케펙스·CAPEX)를 75억 달러(약 10조원)로 늘리겠다”라고 선언한 것에 주목했다. 공급 과잉에 생산을 늘리는 건 경제 논리에 어긋나지만,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에 기대 도리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는 것. 밀러 교수는 “중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향후 3년간 60%, 5년 내 2배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대만에서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학 교수(왼쪽)가 모리스 창(오른쪽) TSMC 창업자와 대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SMIC에 따르면 이 회사 지난 3분기 매출과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80% 감소했다. 회사는 지난 2020년말 미국 상무부의 무역 블랙리스트 목록에 오른 후 실적 하락세다. 그럼에도 설비투자 규모를 연초 계획치(예년 수준인 63억5000만달러)보다 18% 늘려 잡은 것이다. SMIC는 ‘미국 블랙리스트 동지’ 격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화웨이와 협력해 지난해 화웨이 스마트폰용 5G 칩을 생산했다.

태양광처럼 반도체도 덤핑


TSMC가 중국의 칩 인해전술을 지켜보며 우려하고 있다고, 밀러 교수는 전했다. 미국이 첨단 칩 제조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으니 중국은 자동차나 소비자 가전용 저가 프로세서 칩을 공략하는데, TSMC의 CEO는 이 부문 과잉생산이 자사 이익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걱정한다는 것. TSMC 4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이 회사 매출의 25%는 28nm(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상의 구 공정에서 나온다.

밀러 교수는 “가장 비관적인 분석가들은 중국의 태양광 패널 투자를 예로 든다”라며 “일부 무역 변호사들이나 얘기하던 과잉 생산 주제가 이제 주요 7개국(G7) 정책 논의의 최고 수준에서 다뤄진다”라고 적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태양광 패널 공세로 지난해 글로벌 태양광 패널값은 25% 이상 급락했고, 유럽 태양광 업체들이 줄 파산했다. 밀러 교수는 “중국산 칩 덤핑 사태에 미국은 안보 측면, EU는 무역 공정거래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밀러 교수는 특정 중국 업체를 제재하거나, 의료기기·전기차 등 특정 사용처에 중국산 칩을 금지하는 방법 등을 언급하면서도, “서방 기업들이 중국 칩을 안 사면 이런 금지가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각국 정부가 중국의 과잉 생산에 주목하면서, 중국산 저가 칩에 의존하는 기업에 대한 조사 및 압박이 강화될 거라는 얘기다.


여전히 ‘장비 큰 손’은 중국


서방의 대(對) 중국 첨단 장비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반도체 장비 기업인 램리서치와 ASML 등의 중국 매출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경민 기자

반도체 웨이퍼 장비업체인 램리서치의 지난해 4분기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램리서치 매출 중 한국과 중국의 비중은 각각 22%로 대등했으나, 4분기에는 한국(19%)과 중국(40%)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중국은 지난해 3분기 이 회사 장비의 48%를 싹쓸이하며 정점을 찍다가, 수출 규제가 시작된 4분기에 소폭 감소했다. 반도체 노광 장비업체인 ASML 지난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9%로, 전년의 14%보다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이 회사 매출 중 중국 비중이 46%에 달했으나, 4분기에는 39%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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