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팔아 번 수천억을 바이오로···‘차세대 항암제’ 품은 오리온
오리온그룹에 따라다니는 말이 하나 있다. 실탄(현금)은 풍부하지만 M&A(인수·합병)에 소극적이라는 것. 이익률이 낮은 식품 기업으로 고성장에 목말라해왔지만,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는 문화는 아니었다. 최근 10년 새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M&A도 없었다.
그랬던 오리온이 몇 년 전부터 달라졌다. 새로운 먹거리 해답을 바이오에서 찾기 시작했다. 2020년 바이오에 처음 진입한 오리온은 최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레고켐바이오) 지분 25%를 5500억원에 사들였다. 바이오 진출 이후 3년 3개월 만에 첫 대규모 인수합병이다. 다만 바이오 산업 특성상 눈에 띄는 성과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듯 보인다.
얀센에 2조원대 기술 수출 ‘대박’
레고켐바이오는 2006년 설립된 국내 바이오벤처다. 최근 가장 ‘핫하다’는 ADC(항체·약물접합체) 기술 보유 제약사다. ADC는 항체가 약물을 암세포까지 유도한 뒤 선택적으로 공격하기에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공격한다. 기존 화학 요법 대비 효능을 높이고 약물 독성을 줄이면서 정상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항암 치료제로 불린다.
레고켐바이오는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손꼽게 ‘따박따박’ 성과를 내왔다. ‘ADC 기술력 입증 → 다수의 라이선스 아웃(L/O) 체결 → L/O 딜의 질적 성장’이라는 알찬 과정을 밟아왔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13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기술이전료를 전부 합치면 8조7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12월 미국 제약사 얀센에 ADC 신약 후보물질을 2조2000억원 받고 기술이전하며 각광받았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기술 수출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얀센과의 계약으로 단숨에 업계 슈퍼스타로 떠올랐지만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더 멀리 바라봤다. 항체를 보유한 회사에 ADC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 모델에 머물지 않고, 직접 신약 개발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얀센에 수출한 ADC 신약 후보물질은 레고켐바이오가 자체 임상을 계획한 5개 후보물질 중 첫 번째 기술인 만큼, 후속 기술 개발에도 매진해야 했다.
문제는 자금. 얀센으로부터 수령한 계약금으로 연구개발(R&D) 여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기술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는 안정적 현금이 필요했다. 레고켐바이오는 그간 기술이전으로 축포를 터뜨릴 때마다 현금을 마련해왔다. 2020년 역대급 라이선스 아웃을 성사시킨 이듬해 16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번에 오리온과 의기투합한 맥락도 같다. 지난해 말 얀센과 빅딜을 체결한 뒤 불과 약 3주 만에 오리온을 대주주로 맞이했다. 오리온이 투자하는 5000억원은 고스란히 임상과 연구개발 비용 등 운영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증권가는 오리온의 이번 인수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역시 알짜 바이오 기업으로 꼽히는 알테오젠 인수에 실패한 이후 ‘괜찮은’ 차선을 택했다는 평가다. 이미 스타트를 끊은 바이오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오리온은 2020년 중국 국영 제약 업체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와 합작법인을 세우며 바이오에 뛰어들었다. 해당 합작사를 통해 큐라티스의 결핵 백신을 생산하고, 지노믹트리의 대장암 조기진단 기술을 중국에서 상용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국내에서는 국내 치과 질환 치료제 개발 업체인 하이센스바이오와 협력해 난치성 치과 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2상에 들어갔다. 2022년 11월 그룹 지주회사인 오리온홀딩스 산하에 오리온바이오로직스도 설립했다. 오리온홀딩스와 하이센스바이오가 각각 60%, 40%의 지분을 투자했다.
이번 레고켐바이오 지분 인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구주 매입 방식이다. 인수 주체는 홍콩 소재 오리온 계열사인 팬오리온코퍼레이션으로 중국 지역 7개 법인의 지주사다.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오리온은 레고켐바이오를 계열사로 편입하며 기존 경영진과 운영 시스템을 유지한다.
바이오 관련 사모펀드 관계자는 “바이오는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를 오가는 비용, 최소 3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투자와 과감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비즈니스 특성상,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끌 수 있는 오너가(家)가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오리온의 레고켐바이오 인수를 ‘대박 사건’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레고켐 인수 발표 이후 첫 거래일인 1월 16일 한국거래소 주식 시장에서 오리온 주가는 오전에만 17% 넘게 급락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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