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과 교수가 어쩌다 언어 코딩 연구소를 차렸을까
[우연주 기자]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는 별난 영문과 교수의 특별하고 재미있는 수학이야기'라는 부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영문과 교수가 수학을 게다가 코딩까지 가르친다니 참 기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수학을 읽어드립니다 표지 수학을 읽어드립니다 표지 |
ⓒ 한국경제신문 |
우리 반 학생들 중에도 슬슬 수학을 힘들어 하는 게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어려워지는 곱셈과 나눗셈, 새롭게 등장하는 분수의 개념과 적용 등 학생들은 갑자기 늘어난 분량과 높아진 난이도에 버거워한다. 게다가 단위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할 분량은 어찌나 또 많은지. 아등바등 따라가기 바쁘다.
그렇게 힘에 부치는 아이들이 결국 내뱉는 말은 "수학을 왜 배워요?", "수학이 꼭 필요해요?"이다. 어느새 고등학생 시절 배웠던 '근의 공식'이나, '수열', '함수' 등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애매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는 말은 "초등교육은 그래도 가장 기본 중의 기본,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이야"(6학년 학생들에게 했던 말)라거나 "우리가 배우는 것은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과정이야"라거나 "수학을 배우는 것은 결국 문제해결력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완벽한 설득력을 주진 못했다.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수학 관련 전문가들(대학교수, 수학 교사)이 산업 현장에서 수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너무나 방대하고 어려운 수학, 머리 아픈 수학에 배우는 사람들이 지쳐 쓰러져가는 현실 속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먼저 가르치지 않을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제발 필요 없는 것은 가르치지 말자.
교육부에서 의무적으로 제시된 성취기준이나 학습 요소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게다가 수능이라는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획일적인 시험 앞에서 그건 너무나 무모한 시도이다. 그렇지만 알고는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수학 교과서의 취지가 저명한 수학자를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 모두가 수학자가 될 필요도 없고, 우리에게 필요한 수학을 공부하자는 저자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의 대학생이 배우는 것을 우리는 고등학생 때 배운다고 한다. 그만큼 수준이 높은 것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면 좋겠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수포자를 양산하는 현실에서 무조건 많은 것을 떠먹이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수학에 대한 흥미와 동기까지 잃어버리는 학생들에게 수학이 어떤 면에서 유용한지 알려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영문과 교수이면서도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며 남즈연구소라는 언어 관련 AI기술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이 연구소는 수학과 코딩을 함께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음성으로 말하면 문자 텍스트로 전달해 주는 음성인식 기술을 순수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기반의 다양한 언어지능 분야로 업무를 확장했다. 이 모든 것을 영문과 교수 주도하에 문과 출신들이 해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가 코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문송합니다'라는 자조적인 문과 비하 용어처럼 영문과의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돌파구를 찾고자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3차 산업 시대와 달리 지금의 4차 산업시대는 더 이상 인문학만 해서는 경제력을 갖추기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꿈과 이상향도 중요하지만 생계 또한 중요하기에 수학은 아주 유용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남녀 성별로 전공분야와 직업 선택을 따져보았을 때도 남자들이 이과 출신이 많고 따라서 직업도 고소득이 보장된 자리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소득 일자리는 대부분 수학과 관련 있고 말이다.
수학과 관련된 직업은 상대적으로 자발적이고 주체적 성격이 강한 일로 연결되고, 이것은 자부심과 행복, 더불어 경제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공이 인문 계열이니 수학을 몰라도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려야 한다.
고등교육에서 영어 과목이 공통 필수이듯, 수학 과목도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공통 필수가 되어야 한다. 수학이 자연 계열에만 필요하다는 발상은 무지의 소산이다. 수학을 안 해도 되는 전공과 분야가 있다는 것은 무책임한 집단 최면 같은 것에 불과하다.
입력 벡터를 함수 자신과 곱하고 출력 벡터를 뱉어내는 형태, 즉 '입력 벡터×함수 행렬=출력 벡터' 형태의 인공지능을 우리는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sork)'이라고 부른다. 이 인공 신경망이 최근 인공지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 알아도 좋다.
7차 교육과정 첫 세대 문과 출신으로 미적분도 안 배웠던지라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영문학과 교수가 수학과 코딩을 했듯 나도 수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점점 더 수학에 대한 지식과 능력이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도전하고 시도하면 언젠가는 깰 수 있는 도장 깨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했단 말이 큰 용기를 주었다.
수학이 어렵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장담컨대,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수학이 어려웠으니까요. - 아인슈타인
수학이 어렵고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포자가 많이 양산된다. 수학을 아름다운 학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듯이 수학을 가까이하고 많이 접하면 우주처럼 정교하고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에 빠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나도 하나의 신화처럼 쓰인 이 책만 읽고 난 후임에도 수학이 더 많이 좋아지려 하고 있다. 코딩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책에서 말했다.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고. 비록 방대하고 어려운 수학이지만 내가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과 관련된 수학은 또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두려움을 깨고, 조금씩 수학의 세계로 다시 한번 빠져보자!
덧붙이는 글 | 브런치 https://brunch.co.kr/@lizzie0220/691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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