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UAE 손흥민' 내보낸 벤투 감독, 16강 탈락에 역풍 거세다…대표팀 개혁 '멈칫'
김판곤 감독에 이어 신태용 감독, 그리고 이번엔 파울루 벤투 감독까지 짐을 쌌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아랍에미리트(이하 UAE)는 29일(한국시간) '복병' 타지키스탄과 맞붙은 2023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에서 1-1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3PK5로 패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6위인 타지키스탄은 이번 대회 유일한 데뷔팀이다. UAE는 타지키스탄보다 FIFA랭킹이 42계단 높은 팀이지만, 경기 내내 상대를 압도하는데 실패했다. 전반 30분 실점한 뒤 끌려가다, 후반전 막판에야 상대를 몰아붙였다. 후반 43분 PK를 얻을뻔 했지만 무산됐고, 후반 45분에는 알가사니의 슛팅이 골대를 때렸다. 추가시간 5분, 알하마디의 동점골이 터지며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UAE의 이번 대회 행보는 승부차기까지였다.
벤투 감독에게는 아시안컵 두번째 시련이다. 2019년 UAE 개최 대회에서는 대한민국을 이끌고 8강에 올랐지만 카타르에 패해 탈락했다. 이번엔 그보다 못한 16강에서 아쉽게 여정을 마쳤다.
'UAE의 손흥민' 알리 마브쿠트 외면한 벤투 감독
UAE 축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벤투 감독이 부임한 지 6개월이 갓 지난 상황이라는걸 감안해도, 이번 대회에서 결과는 물론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던 탓이다. 더군다나, 선수 선발과 기용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까지 뒤따르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특히, 'UAE의 손흥민'이라 할 'No.7' 알리 마브쿠트를 대회 내내 단 1분도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브쿠트는 UAE 축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슈퍼스타. 대표팀 주장도 오래 맡아온 선수다. 하지만 별다른 부상이 없음에도 이번 대회 UAE가 치른 4경기에서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조별리그 1차전 홍콩전과 2차전 팔레스타인전에는 벤치를 지켰고, 3차전 이란전과 16강 타지키스탄전에는 아예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현지 관계자는 "마브쿠트는 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UAE 코칭스태프 역시 마브쿠트의 결장이 "기술적이며 전술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UAE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16강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를 통해 마브쿠트 제외 이유를 밝혔다.
"선수들의 훈련 모습, 전술이해도, 그리고 태도와 뛰고 싶은 의지를 모두 고려해 출전 선수를 정한다.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 그런 선수는 나라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 과거에 어떤 선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마브쿠트 제외는) 내가 내린 결정이다. 팬들이 아니라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레전드' A매치 85골, 마브쿠트는 여전히 전성기
마브쿠트는 세계 축구 역사상 A매치에서 골을 6번째로 많이 넣은 선수다. 지금까지 A매치 114경기에 출전해 85골을 기록하고 있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128골),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106골), 수닐 체트리(인도/93골)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아시안컵에서는 2015년 득점왕에 오를 때 터뜨린 5골을 포함해 총 9골로 역대 4위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과거에 어떤 선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언급하며 마브쿠트를 제외했다. 문제는 마브쿠트가 여전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팬들은 아직도 자국내 최고 선수인 마브쿠트를 쓰지 않는 벤투 감독의 선택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1990년생인 마브쿠트는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지만, 여전히 소속팀에서 풀타임 경기를 뛰며 거의 모든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중이다. 2023-2024 시즌 UAE 프로 리그에서, 팀이 치른 12경기 가운데 10경기에 출전해(7경기 풀타임) 8골 5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올라있다. 이전 시즌에는 해트트릭 2차례를 포함해 27골을 터뜨려 리그 득점 2위를 차지했고, 생애 4번째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데뷔전인 9월 12일 코스타리카전부터 마브쿠트를 선발에서 제외했다. 팀은 4-1 대승을 거뒀지만 마브쿠트는 이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벤치를 지켰다. 마브쿠트는 리그에서 2경기 3골을 넣고 대표팀에 합류한 상태였다.
벤투 감독은 마브쿠트가 한 달 넘게 득점을 하지 못하고 있던 때에 오히려 기회를 줬다.10월 소집 첫 경기인 쿠웨이트전 후반 15분 마브쿠트를 투입했고 , 두번째 경기인 레바논전에 비로소 주장 완장을 채워 선발 출전시켰다.
주전 복귀한 마브쿠트는 11월 소집 때 연속골을 터뜨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월드컵예선 네팔과의 홈 경기 때 선발로 나서 2골을 넣었고, 바레인 원정에서는 결승골을 터뜨렸다. 아시안컵 최종명단이 발표된 뒤에 가진 키르기스스탄과의 평가전 때도 결승골은 마브쿠트의 차지였다. 3경기에서 4골(3PK)을 넣은 마브쿠트는 아시안컵에도 주전 자리가 보장된듯 보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 본선 4경기에서 모두 마브쿠트를 외면했고 16강전에서 탈락했다.
전임 감독은 실패했던 마브쿠트 길들이기
사실 마브쿠트와 대표팀 감독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장 전임 로돌포 아루아바레나 감독 체제 때도 마브쿠트는 공개적으로 감독과 충돌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아루아바레나 감독은, 작년 1월 걸프컵 참가선수 엔트리에서 마브쿠트를 제외했다. 마브쿠트 외에 부상 등을 이유로 베테랑 4명이 더 명단에서 빠진 탓일까. UAE는 걸프컵에서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를 상대로 1무 2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대회가 끝난 뒤 아루아바레나 감독은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카자흐스탄전을 앞두고는 워밍엄을 거절했다"는게 마브쿠트 제외 이유였다고 공표했다. 성적 부진의 이유를 대회에 참가하지도 않은 최고 스타에게 돌린 셈이다.
공개 저격을 당한 마브쿠트는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게재했다. 번호까지 매겨 일일이 반박하는 형식으로 쓴 장문의 글이었다. "감독은 그날 나한테 워밍업하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게다가 그 경기가 끝난 뒤 대화를 나눌 때 분위기도 좋았다. 명단 제외할 때는 전술적인 이유라더니 이제와서 왜 말이 바뀌나."
이후 마브쿠트는 대표팀 3월 소집 명단에서 제외됐다. 팀은 타지키스탄과 태국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하며 1승 1무의 성적을 냈다. UAE 축구협회의 선택은 마브쿠트가 아닌 아루아바레나 감독과의 결별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마르크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뒤를 이어 부임한지 15개월만의 일이다.
벤투 감독의 미래, 마브쿠트와 화해? 계속된 개혁?
파울루 벤투 감독의 미래는 아직 미지수다. 전임 감독 체제에서 힘이 더 커진 마브쿠트와의 갈등 관계, 그리고 16강 탈락의 성적은 순탄치 않은 미래를 점치게 하는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장기 계약을 맺고 부임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긴 시간을 얻었을 때 명확한 성과를 낸 감독이라는 점에서 벤투 감독에게 더 힘이 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대회에서 벤투 감독은, 전설적인 선수를 벤치에 앉혀두는 대신 경력이 일천한 2004년생 공격수를 전방에 세웠다. A매치 85골의 마브쿠트 대신, 소속팀에서 올 시즌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있는 술탄 아딜을 기용했다. 술탄 아딜은 조별리그 1,2차전에서 연속골을 넣으며 벤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16강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탈락했다. 검증되지 않는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잠재력을 이끌어낸 벤투 감독의 선택은 성공적이었지만, 마브쿠트를 명단에서 아예 제외하며 공격진 공백을 메우지 않은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UAE의 벤투호는 이제 월드컵 예선에 집중해야 한다. 바레인, 예멘, 네팔과 한 조에 속한 2차 예선은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본선 무대를 감안하면 젊은 선수들을 대거 중용한 선택에는 이해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마브쿠트와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팀 분위기를 다잡고 주도적으로 팀을 이끄는 데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16강 탈락은 자칫하면 그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벤투 감독이 대한민국에서도 그랬듯, 초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자신의 색깔을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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