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걱정을 맡아줘. 나 다시 일할게” [내 인생의 오브제]
그녀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지난 2019년 9월 7일,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보게 된 김정빈 수퍼빈 대표. 윤 작가의 애틋한 사연을 읽고 직접 메신저를 보낸다. “제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당시 윤작가의 암은 이미 자궁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꼭 수술받고 싶은 의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마침 김 대표가 잘 아는 의사였다. 그 의사는 김 대표 부탁을 받고 다른 환자에게 방해되지 않게 주말에 시간을 내 집도했다. 그런 인연의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메신저로 처음 소통한 후 4개월이 지난 2020년 1월 병원 식당에서였다.
코로나19로 비즈니스 환경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 수퍼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페트병, 캔 등 재활용품을 인공지능 기술로 선별하고 수거하는 ‘네프론’이란 로봇을 제조하는 기업 ‘수퍼빈’을 창업했다. 로봇이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이용해 화학 회사들이 석유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알갱이 형태의 플레이크라는 소재를 만드는 자원순환 비즈니스. 그러나 당시 수퍼빈은 투자 유치를 받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를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 분이 바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윤 작가였다. 그녀는 수퍼빈과 함께 제주도에서 쓰레기 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수퍼빈으로서는 회사를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 미술관에 전시할 동화를 그린 윤지회 작가. 환자 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완성도. 마지막 삶의 불꽃을 그녀는 그렇게 태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료였습니다. 일의 영역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았죠. 윤 작가는 동화로 꿈을 주는 거였고 저는 재활용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둘 다 후세를 위해 어른으로서 할 일이잖습니까?”
김 대표는 “내가 좀 더 건강했으면 더 많은 일을 함께하면서 대표님 사업을 도울텐데라며 오히려 본인보다는 내 걱정을 했던 윤 작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병석에서 인형 하나를 직접 만든다. 그게 ‘걱정 인형’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분입니다. 그 길에 만나는 모든 걱정과 근심은 이 인형에게 맡기고 그냥 본인의 길을 걸어 가시라”고.
그게 유언이 됐다. 인형을 건네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다.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그녀가 가는 길을 따사롭게 감싸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김 대표는 힘든 일 닥칠 때마다 인형을 본다. 그러면서 혼자 되뇐다. “내 걱정을 맡아줘. 나 다시 일할게”라고. 많은 걱정을 덜어낸 수퍼빈은 이제 120여개 지자체 등과 협업하며 전국에 1000대가 넘는 폐기물 재활용 로봇 네프론을 공급하게 됐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김 대표의 비전에 시장은 2000억원이 넘는 기업가치를 매겼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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