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의 고차방정식]소비 반토막 났는데 오히려 '쌀값 올려야'…복잡한 쌀값의 경제학
해묵은 ‘쌀값’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수확기 쌀값 한 가마니(80㎏) 20만원’ 선을 지켜줬지만 수확기를 지나면서 산지 쌀값은 20만원 선을 밑돌고 있다. ‘밥심으로 산다’던 것도 옛말, 국내 쌀 소비가 30년 만에 반토막 날 정도로 쌀의 소비가 줄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남는 쌀을 혈세로 사들인다’는 비판과 국내 농업 기반 확보 및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쌀값 안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9일 오전 충남 예산 통합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찾아 산지 쌀 수급동향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안정적 쌀값 유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송 장관이 직접 현장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15일 기준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이 20㎏들이 한 포대에 4만8958원으로, 가마니 기준으로 20만원을 하회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80㎏ 기준 20만원’은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시 정부가 제시한 기준이다.
산지 쌀값이 가마니당 20만원 이하로 하락했다고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것은 ‘수확기(10~12월) 쌀값 20만원’이지, 1년 내내 쌀값을 이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쌀은 작물 특성상 10~12월에 새 쌀이 나오는데, 이때 농협과 민간 RPC, 도정 업체들이 벼를 매입한다. 쌀값은 생산자가 원가에 이윤을 붙여서 파는 구조가 아니라 농협과 민간 RPC의 협상을 통해 결정되다 보니 재고 부담에 쌀값이 수확기보다 하락하는 것이다.
쌀값 하락은 식생활의 변화로 국내 쌀 소비가 30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쌀 관세화 유예 조건으로 2015년부터 매년 40만t의 쌀을 의무 수입해오는 것도 수요 감소에 더해 가격 하락을 부추긴다. 의무 수입 분량은 전체 쌀 생산량의 10%나 된다.
‘20만원’은 정부가 지키겠다고 제시한 임의의 기준일 뿐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오히려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제시한 20만원보다 더 높은 가마니당 26만원이 적정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급등한 생산비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비인 원가는 2016년 10㏊당 67만4340원에서 2021년 79만2265원으로 연평균 3.3% 완만하게 오르다가 2022년 85만4000원으로 7.9%나 증가했다. 그 해 논벼의 순수익은 36.8%나 감소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로 전 세계적으로 곡물가와 비료비가 급등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가계에서는 지난 몇 년 새 부쩍 오른 쌀값이 부담스럽다. 2017년 가마니당 목표 가격이 15만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가마니당 20만원’도 6년 새 33%나 오른 수치다. 서민들은 쌀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데, 농민들은 쌀값이 생산비 상승에 못 미친다며 쌀을 정부가 더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한 쪽 편을 들기 어려운 복잡한 난제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정부가 직불금을 주는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쌀 재배 면적을 줄여나가는 중이다. 특히 콩 직불금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가루 쌀’ 직불금은 올해 2배로 상향해 벼 농가들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농업인의 날’ 기념사에서 임기 내 농업직불금을 5조원 규모로 늘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쌀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야당은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의 개정안을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단독 의결했다. 쌀이나 주요 농산물 가격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것이 골자로, 여당은 ‘혈세 낭비’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논쟁만 있을 뿐 남는 쌀을 어느 정도까지 매입해주며 농업을 살려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여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쌀 매입을 ‘혈세 낭비’ 차원이 아닌 식량안보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2017년 103%를 기록하며 한때 100%를 넘어서기도 했던 쌀 자급률은 2019년 92.1%에서 2020년 92.8%, 2021년 84.6%로 점차 하락하는 추세다. 그나마 쌀의 경우는 낫지만 콩이나 밀 등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 수준에 머문다. 향후 이상기후와 지정학적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점차 고령화되고 있는 쌀의 생산 기반을 지키려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농촌 인구가 줄고 소멸하는 가운데 아무리 기계화를 잘하고 스마트팜을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농업 구조에 한계가 올 수 있다"며 "앞으로 쌀 자급률마저도 80%대에서 50%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식량 안보 차원에서 쌀 농업 기반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비슷한 단립종 쌀을 먹는 중국과 일본은 한국보다 식량안보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식량안보지수(GFSI)를 보면 2021년 한국과 일본, 중국은 각각 32위, 8위, 34위에서 2022년 한국만 39위로 뒤처졌다. 일본은 2단계 상승한 6위, 중국은 9단계 상승한 25위를 기록했다.
세종=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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