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홍콩 ELS' 녹취 제공 꺼리는 은행…금감원 "금소법 위반"
23조1항·17조2항·28조3항에 위배
"금융소비자에게 지체없이 제공해야"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해 손실을 본 한 고객은 은행을 찾았다가 복장이 터질 뻔 했다. 민원조사를 위해 가입 당시 녹취 파일을 달라고 하자, 은행 측이 "녹취는 개인정보임으로 들려만 줄 수 있다"고 거절한 것이다. 이 가입자는 몇 번의 전화를 거친 끝에야 간신히 녹취 내용만 들을 수 있었다.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 ELS 상품의 불완전판매 정황을 포착하고 현장 검사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해당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권의 고객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고객이 가입 당시의 녹취 파일과 작성했던 서류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일부 은행에서 이를 꺼리는 태도로 '꼼수 대응'을 하고 있어서다.
다만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위반이란 점을 명확히 하면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에서 홍콩H지수 ELS 가입 당시 녹취 파일을 돌려주지 않아 피해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절차상의 이유로 녹취 파일을 최대한 늦게 전달하거나, 가입 지점이 아니면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일한 지점인데도 고객에 따라 녹취 파일을 가려서 주는 경우도 있었다.
2021년 3월 한 시중은행에서 홍콩H지수 ELS를 가입한 A씨는 계약서와 상품설명서, 투자성향분석, 녹취파일을 받기 위해 집 근처 영업점을 방문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은 "상품 판매 당시 담당직원이 발급해줘야 해서 다른 지점에서는 가입한 상품 서류들을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A씨는 "이사를 했거나 담당직원이 퇴사했으면 어떻게 하냐"고 반문했더니 이 직원은 "이사를 했어도 거기까지 방문을 해야 하고, 담당 직원 업무를 인계받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입지점까지 방문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다른 지점에서 서류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인하고 왔다"며 재차 요구했다. 이에 은행 직원은 "계약서와 상품설명서는 줄 수 있지만, 녹취 서류는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녹취 파일을 신청하고 메일로 받는 방식이 상품을 가입한 지점이 아니면 받을 수 없다는 방침이다.
A씨는 녹취 파일을 끝내 받지 못했다. 그는 "홍콩H지수 ELS에 가입했다가 원금 4000만원이 1600만원이 됐다”며 “다른 피해자 분들에 비해 적은 돈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초년 시절 모은 돈을 예금인 줄 알고 가입했다가 몽땅 날리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같은 은행의 다른 지점에서 홍콩H지수 ELS를 가입한 고객 B씨는 "은행에 가서 인상 쓰고 언성을 높이니깐 지점장이 달려와서 바로 녹취 파일을 줬다"며 "은행이 방어에만 급급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경우 고객이 녹취 파일을 원할 경우 '금융거래 정보제공 요구(동의)서'와 별도로 자필 서명이 포함된 일종의 '각서'를 작성토록 했다. 각서에는 '녹취 파일의 유출 및 가공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귀행에 묻지 않겠다'란 내용이 담겼다. 고객으로 하여금 압박감은 물론 불법 소지가 다분한 요구를 강제한 것이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이런 행태를 두고 금소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한 것이란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소비자의 녹취 파일 제공 요청은 법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금소법 제 23조 1항에 따르면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 및 금융상품자문업자는 금융소비자와 금융상품 또는 금융상품자문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금융상품의 유형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계약서류를 금융소비자에게 '지체 없이' 제공해야 한다. 다만 계약내용 등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해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계약서류를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같은 사례가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
17조(적합성의 원칙) 2항도 비슷한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조항은 금융상품판매업자들은 일반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 계약 체결을 권유하는 경우 서명, 기명날인, 녹취 또는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으로 확인을 받아 이를 유지·관리해야 한다. 확인받은 내용은 금융소비자에게 '지체 없이' 제공해야 한다.
28조 3항에서는 금융소비자가 분쟁조정 또는 소송의 수행 등 권리구제를 위한 목적으로 금융상품판매업자등이 기록 및 유지 관리하는 자료의 열람(사본의 제공 또는 청취를 포함한다)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H지수 ELS 상품 '불완전판매' 여부를 다투기 위해 고객이 녹취파일을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홍콩 주식시장 급락에 따른 홍콩H지수 ELS 투자자 손실 위험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할 예정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등 4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 만기 손실액은 지난 26일까지 3121억원으로 집계됐다. 확정 만기 손실률은 53%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또1104회당첨번호 '1·7·21·30·35·38'…1등 당첨지역 어디?
- 민주당, 선거법 가지고 이번엔 또 무슨 장난치려고?
- '울산시장 선거' 조국·임종석 재수사하는 검찰…4월 총선이 변수
- 제주도 안 가도 볼 수 있다…1월에 가볼 만한 '동백꽃 내륙 명소'
- ‘일찍 자야하나?’ 졸전 펼친 클린스만호, 황금시간대 없는 토너먼트
- 한동훈 "이재명, 판사 겁박…최악의 양형 사유"
- "이재명은 내가 잡는다"…누가 '저격수' 해냈나
- 트럼프 1기 참모가 한국에 건넨 '힌트'
- 클리셰 뒤집고, 비주류 강조…서바이벌 예능들도 ‘생존 경쟁’ [D:방송 뷰]
- '승점20' 흥국생명 이어 현대건설도 7연승 질주…24일 맞대결 기대 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