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느리지만 묵묵하게 전한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메시지 [D:인터뷰]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배우 정우성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이다. 13년 전 일본 원작의 판권을 직접 구매한 것은 물론, 오래 곱씹으며 여운을 이어갈 수 있는 작품을 향한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요즘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어떤 선택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와 어울릴까’에만 집중하며 ‘웰메이드’ 멜로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정우성은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소리 없는 사랑을 다룬 ENA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주인공 차진우 역을 맡아 10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앞서 JTBC 드라마 ‘빠담빠담’에서 배우 한지민과 로맨스 연기를 펼친 이후, 오랜만에 도전하는 멜로드라마로도 기대를 모았다.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은 ‘서울의 봄’을 비롯해 ‘헌트’, ‘강철비2: 정상회담’ 등 주로 장르물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치던 그의 멜로 연기에 대한 기대도 쏟아졌던 것이다. 정우성은 “나이 50살에 멜로를 하려니 힘들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출연을 결심했다는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정말 부담감이 있었다. 차진우를 다른 배우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제가 차진우를 연기하면서 캐릭터의 나이도 올려야 하고, 또 지금의 차진우에 맞는 정모은을 선택하는데도 제약이 생긴다. 내가 안 하면 자유가 생기는 거다. 그런데 판권을 가지고 올 때 ‘정우성이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판권을 가지고 왔는데, 출연을 못하면 미안할 것 같았다. 오히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것 같더라.”
정우성이 연기한 차진우는 청각 장애인 화가로, 수어 또는 눈빛과 표정으로 소통하는 인물이었다. 수어를 배우는 것은 기본, 차진우의 표정 또는 몸짓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 또한 정우성에게는 숙제였다.
“진우는 소리에 반응을 하지 않아야 했다. 그것부터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수어를 사용하면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표정도 더 많이 써야 했다. 그런데 진우의 성격을 생각하면 표정을 절제하는 것이 맞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구분을 지었다. 학생들을 대할 때와 일상에서의 진우의 표정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다.”
과거 드라마 제작을 시도했을 때는 ‘어느 정도 회차가 지나 차진우가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다. 청각 장애인이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말 대신 수어, 그리고 눈빛으로 대화하면서 ‘소통’의 의미를 파헤치는 이 작품에서 설정을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제작되는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향해서도 ‘너무 잔잔하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우성은 긴 시간을 기다려 제작한 만큼, 이 작품의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처음 대본 회의를 했을 때 ‘사건이 부족하다’,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관계를 맺고, 또 서로를 이해하고. 그 과정이 다 사건이다. 그걸로 충분히 고민하고 또 힘들어하기도 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그런 것들의 무게를 담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했다. 사유의 깊이를 담는 드라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자기 악인이 등장하고, 둘의 관계를 말리고 이런 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의도를 함께해 준 동료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특히 멜로 상대였던 신현빈에 대해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신현빈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동료들과 함께 ‘‘사랑한다고 말해줘’에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만든 것에 더욱 만족했다.
“제가 지향하는 방향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건 연출자, 동료 배우들의 도움이었다. 그 방향이 맞다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현장에서 촬영에 임하는 스태프들의 지지도 필요했다. 결국에는 좋은 드라마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정우성이 지향하는 방향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천만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물로 대중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이렇듯 다른 색깔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이 흥행할까’보다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난 작품을 선택하며 늘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운이 깊은 작품들을 만나게 됐다.
“도전을 목적으로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그런데 늘 내게 주어진 수식어를 벗어던지는 선택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제가 도전하는 배우라는 인정이 뒤따라온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제 성향인 것 같다. ‘멜로는 왜 저렇게 팀장님과의 사랑이 많을까’ 그런 생각에 ‘빠담빠담’을 하기도 했고. 우리 드라마도 밑바닥에 그런 (새로운) 정서가 있어서 용감하게 선택을 한 것 같다. 무조건 도전을 하겠다는 것보단 어떤 게 재밌을까 싶다. 나도 재미적 요소를 따라간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재미가 트렌드 안에 머무르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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