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배우 김미경, ‘국민 엄마’로 불리기까지 [IS인터뷰]
강주희 2024. 1. 29. 05:44
“28살 때 80살 노인 연기를 했어요. 연기자가 직업인데 나이 때문에 안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요. 주변에서 ‘억울하지 않냐’고 하는데, ‘내가 연기잔데 뭐가 억울하냐’고 했어요. 수영복을 입고라도 뛰라면 뛰어야죠.”
배우 김미경은 25일 서울 서초구 씨엘엔컴퍼니 사옥에서 진행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종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웰컴투 삼달리’는 개천에서 난 용 같은 조삼달(신혜선)이 모든 걸 잃고 추락한 뒤,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사랑을 찾는 이야기. 여기서 김미경은 ‘조삼달 세 자매’의 엄마 고미자를 연기했다.
개성 넘치는 세 자매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미자는 이른 새벽 내복 차림으로 온 동네를 뛰며 속 타는 마음을 식혔다. ‘내복 질주’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는 김미경. 하지만 곧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오해영’에서도 화가 나면 옷을 벗는 엄마였어요. 처음엔 ‘왜 그러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냥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자식을 향한 엄마 마음은 다 똑같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됐어요.”
지금은 ‘국민 엄마’로 불리지만 처음부터 엄마 연기가 좋았던 건 아니다. 젊었을 때도 엄마 역할을 했다는 김미경은 “20대에 엄마 역할을 맡긴 건 좀 심했다. 그때는 변장을 하고서 연기를 했는데, 그거 끝나고 엄마 역할이 물밀 듯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역할이든, 오래도록 연기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작품 선택 기준은 없어요. 웬만하면 거르지 않고 다 해요. 같은 엄마 역할이라도, 나는 이 인물을 처음 만나는 거니까.”
‘김미경표’ 연기의 힘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왔다. 아버지는 김미경이 10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 홀로 네 자매를 키웠다. 그러나 김미경은 아버지의 부재가 슬프거나 외롭지 않았다. 네 자매 중 한 명도 소홀히 하지 않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덕분이다.
“이게 내가 엄마에게 보고 배운 거예요. 엄마 역을 할 때 그에 맞는 캐릭터 찾아가되, 기본적으로 내가 배운 엄마의 마음으로 가는 것 같아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작품에서 엄마로 활약한 김미경은 이제는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손색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가 됐다. 자식을 향한 사랑을 말보단 묵묵히 지켜보는 시선으로, 때로는 재기 넘치는 유머로 승화했던 그의 연기는 시청자에게도 든든한 지원군 같은 위로로 다가왔다.
김미경은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고 싶은 욕심도 드러냈다. 그는 “나는 일 욕심이 많고 일 중독이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없는 현실적 부딪힘이나 서글픔은 있지만, 극단적인 캐릭터도, 액션도 해보고 싶다”면서도 멜로는 예외라며 웃었다.
“그건 정말 두드러기가 나서 못하겠어요. 나쁜 엄마까지는 좋은데, 이 나이에 멜로하면 그건 폭력이지.”
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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