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트럼프 돌아와도...김정은, 북∙미 직거래 성공 못해" [트럼프포비아 긴급 점검]
“트럼프 대통령은 ‘나쁜 합의(bad deal)’를 박차고 나온 것입니다.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협상 테이블에 내놓은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내린 결정이기에, 다른 어떤 것도 그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2018~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실무적으로 깊숙이 관여한 앨리슨 후커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에 대해 “(김정은의 제안은)북한의 핵 능력을 남겨둬 미국을 위협에 계속 처하게 하는 것이었다”며 이처럼 말했다.
트럼프 재선 시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스몰 딜’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25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백악관과 국무부 등에 20여년 간 근무하며 아시아, 특히 한반도 관련 업무를 주로 맡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한반도보좌관으로서 싱가포르-하노이-비무장지대(DMZ)에서 이뤄진 북·미 정상회담 관련 실무를 이끌었다. 이전에는 국무부 정보 및 분석국에서 분석관으로 일하며 오랜 기간 북한 정보를 다루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몇 안 되는 대표적 지한파로 꼽혔던 이유다.
지금은 ‘미국세계전략연구소’에서 인도태평양 담당 부회장을 맡고 있는 후커 전 선임보좌관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나는 현재 민간인이며, 정부 혹은 어떤 선거 캠프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저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할 뿐이니 유의해줬으면 좋겠다”고 전제를 달았다. 트럼프 재선 시 외교안보라인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을 후보로 점쳐지는 그이지만, 실제 현재 진행 중인 미 대선 경선 과정에서 특정 캠프에 몸담지는 않고 있다. 이에 자신의 견해가 트럼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명확히 한 것이다.
인터뷰는 유지혜 외교안보부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최근 김정은이 남한에 갈수록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데.
“바깥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하는 가운데 고강도 위협을 함으로써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적으로 알리려는 것 같다. 그와 같은 독재자가 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할 때 무시해선 안 되고, 우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Q : 미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나.
“북한은 항상 미 선거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남한을 주적으로 삼은 것은 미국과는 미래에 다시 협상에 나설 공간을 남겨둔 것일 수 있다. 잠재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설 때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주된 이유는 아닐 것 같다. 여러 목적이라고 본다.”
Q : 김정은의 딸 주애의 등장은 어떻게 보나.
“추정을 할 뿐이지만,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어땠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은 김정은이 공식 후계자가 아닌,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그가 지도자가 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걸 바랐다. 김정은도 ‘북한에서 미래에 여성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다’는 토대를 까는 것일 수 있다.”
Q : 백악관은 현재 진행 중인 북·러 간 군사 협력이 10년 안에 북한 위협의 본질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정보는 없지만, 매우 실용주의적인 두 지도자가 거래적(transactional) 관계를 심화하는 것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러시아는 포탄이 절박하고, 북한은 그 대가로 무언가 얻을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현 무기 프로그램이 어떻게 개량될 것인지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트럼프 재선 시 핵 동결을 대가로 제재를 완화해주는 대북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나.
“(그 사이)국제정세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어떤 협상을 진행하길 원하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전개되는 상황이나 조건에 달렸다고 본다.”
Q : 북·미 간 협상이 이뤄졌던 2018~2019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트럼프가 ‘하노이 노 딜’을 택할까.
“흥미로운 질문이다. 내 생각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쁜 합의를 하지 않기 위해 협상 결렬을 결정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김정은이 테이블에 내놓은 것을 미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 이는 북한의 핵 능력을 남겨놓기 때문에 미국이 계속해서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그의 결정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액면 그대로 (김정은이 내놓은 것을)봤고, 우린 그런 합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김정은은 당시 영변 핵시설만 포기하는 대가로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트럼프는 추가적 핵 포기를 주장했다. 김정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트럼프는 협상을 중단하고 하노이를 떠났다.
Q : 협상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여전히, 앞으로도 유지해야 할 입장인가.
“우리가 북한과 다시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협상하게 된다면, 상호적인(reciprocal) 행동이 이뤄져야 한다.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 측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또 협상을 하게 된다면 이는 핵 뿐 아니라 미사일 능력, 투발 시스템 등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사일 능력 축소도 필요하다. 제재 완화, 혹은 다른 어떤 것이라도 이뤄지려면 가시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협상의)공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다. 여전히 김정은의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 달성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동안 그는 잠시 동안은 진지하게 비핵화가 가져올 미래를 생각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게 불가능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비핵화에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다시 비핵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잘 모르겠다.”
Q :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 중일 때도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인 한국 정부를 배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지금 북·미 간 ‘직거래’를 원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동맹은 강력하다. 이번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계속 그럴 것이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진지하게 대화하게 된다면 한국과 긴밀히 소통할 것이다.”
Q : 다만 한국민은 트럼프가 동맹의 옹호자가 아니라는 점을 알기에 걱정이 많다.
“선거 결과에 대한 걱정과 신중함을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7년 방한해 한국 국회에서 했던 연설을 돌이켜봤다. 그는 한·미 동맹의 성취, 동맹 방어에 대한 공약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방위비 분담이나 주한미군 문제에서 걱정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런 개별 이슈보다 트럼프 행정부 4년 전반에 걸쳐 어땠는지 봐주면 좋겠다.”
Q : 한·미는 대북 확장억제를 강조한다. 현재로선 확장억제 강화가 유일하게 효과적인 접근법일까.
A : “확장억제는 매우 중요하며 최선의 방책이다. 내가 미 정부에 20년 간 있었는데 그동안 한·미가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취한 모든 단계들은 적절했다.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확장억제 강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 내에서 논의되는 독자 핵무장은 여러 측면에서 치를 비용이 크다.”
Q : 트럼프 행정부 첫 해에 미국은 중국을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 state)로 정의했다. 아직도 유효한가?
“그렇다. 우리는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 일대일로(一帶一路), 경제적 강압, 남중국해에서 공격 행위, 대만에 대한 위협 등을 목격했다. 중국이 최근 약간은 조용해진 듯 보이더라도 그들의 최종 목표나 근본적 접근법이 바뀐 건 아니다. 한·미·일 등 뜻을 함께 하는 국가들이 대중 정책에 있어 합심해야 한다. 이는 우리들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것이다.”
Q : 향후 미·중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분야는 어디일까
“모든 분야다. 중국은 자체 군사력을 키우는 데 골몰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타 동맹은 경제안보, 사이버안보, 공급망 탄력성 등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디지털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앱을 활용해 일반인들의 일상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이는 개인과 국가를 모두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 말기에 하려다 실패했던 일인데, 중국의 앱을 금지하고 중국이 일반인에게 접근하는 걸 막는 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디지털 관련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간 조율된 접근이 필요하다.”
Q : 윤석열 정부는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했는데, 대중 정책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윤 정부가 중국에 관해 강한 입장을 표명하고 대만에 지지를 보낸 건 고무적(encouraging)이었다. 중국의 위협 앞에서 대만을 지지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대만을 외교적으로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양안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입장을 바꾸지 않고도 대만을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한국은 대만에게 재난 구호, 인프라 제공 등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서도 대만을 지원할 수 있다.”
Q : 한국민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 “나는 한국을 매우 중시한다.(care a lot about) 내 경력 상당 기간 동안 한반도 업무를 할 수 있어 기뻤다. 한·미 동맹은 매우 강력하며, 한·미·일 협력은 굉장한(extraordinary)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매우 과감하고 용기 있는 한 발짝을 내디뎠고, 앞으로 계속되길 바란다. 나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개념을 강하게 믿는다. 힘을 드러내는 것이 도발적인 게 아니다. 오히려 '취약함'이 도발을 불러올 수 있다. 현재 벌어지는 많은 일들도 세계에서 마치 미국이 취약한 것처럼 인식됐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군사든 경제든 외교든 힘을 갖고 강하게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적에 맞서 동맹·우방과 함께 단합된 저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정리=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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