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무죄 받았지만…法, 임종헌 혐의엔 여지 남겨 [1810일 걸린 세기의 재판]
이른바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1심에서 47개 혐의에서 전부 무죄를 받았다. 이 중 41개 혐의에 적용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공무원이 ①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 사항에 관해 ② 권한을 남용해 ③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 즉 ①+②+③이 모두 해당할 때 성립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1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가 양 전 대법원장의 2019년 2월 구속기소 이후 1810일 만에 이뤄진 이날 선고에서 판결문을 읽는 데만 4시간 27분 걸렸다. 사법부 수장이던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유무를 따지기 위해 우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공모 혐의를 받는 당시 행정처 고위 간부와 법관들에게 직권이 있는지, 이를 남용했는지 등을 따진 뒤 양 전 원장이 이들과 공모했는지를 피라미드식으로 올라가는 논리적 순서를 밟았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재판 보고서’…“남용 아니다” “양승태 공모 어려워”
다른 재판개입 의혹(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등)에 대해서도 판단이 비슷했다. 임 전 차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등 각종 보고서 작성을 행정처 판사들에게 시켰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직권을 행사한 건 맞지만 필요한 일을 시켰기 때문에 권한을 남용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아울러 작성된 보고서를 재판연구관 등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하는 등 혐의는 임 전 차장에게 애초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이 행사되지도 않았다고 봤다. 양 전 원장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일부 행정처 판사의 직권남용엔…“양승태 공모 증거 없다”
이에 대해 행정처 출신의 한 판사는 “애초에 검찰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구체적 실무에 관여하지 않는 법원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통상적인 사법행정 절차를 부당하게 불법으로 규정하고 기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승태 공모’ 빼고 일부 혐의 인정…임종헌 선고 주목
임 전 차장이 ① 국제인권법연구회 탈퇴를 종용하는 차원에서 벌였다는 ‘전문분야 연구회 개선방안’ 보고서’ 등 작성 지시 혐의 ②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함께 헌재 재판관과 연구관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 ③ 통진당 관련 재판에서 사법지원실 총괄심의관에게 자료를 전달케 한 혐의 등이다. 다만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과 다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 김현순·조승우·방윤섭)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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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 기소돼 11명 무죄…이탄희 “누구에 책임 묻나” 반발
2017년 3월 사법농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후 모두 14명이 기소됐지만 결과는 초라하다. 26일 1심 무죄를 받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포함해 11명(6명 무죄 확정)이 1·2·3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만이 2심에서 각각 벌금 1500만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진보법관 모임 와해 의혹 등을 제기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의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라며 “재판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사법부에서는 애초에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였고, 그 배경에는 과거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높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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