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되면 북핵 용인? '겪어본 그들' 되레 고개 젓는 이유 [트럼프포비아 긴급 점검]
미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대세를 굳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누구보다 응원할 사람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으며 브로맨스를 나눴던 트럼프의 귀환은 김정은에게 기회의 창이 열리는 것일 수 있어서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을 동결하기만 해도 제재를 완화해줄 것이라는 보도(지난해 12월 폴리티코)나 “트럼프가 (안보)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용인할 수 있다”는 전망(16일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은 김정은의 희망과 한국민의 불안을 동시에 부추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1기 때 북·미 협상 과정을 잘 아는 전·현직 당국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협상 시작점’ 낮지 않다
이와 관련, 북한은 사실 이에 앞선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협상 때부터 “영변은 포기할 수 있다”며 영변 핵시설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고 한다. 한 전직 당국자는 “싱가포르 회담 이전부터, 또 이후에도 북한은 시종일관 영변을 내놓을테니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최종 목표를 규정하는 것은 거부했다”며 “이에 미국은 김정은이 원하는 것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영변만 비핵화’인지 의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다른 전직 당국자는 “막판에는 트럼프가 ‘아무 거나 하나라도 더 포기하라’고 했지만 김정은은 끝내 거부했고, 이에 싱가포르 때나 하노이 때나 달라진 것이 없다고 여긴 트럼프가 협상을 파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김정은이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렸는지 미스테리”라면서다.
일련의 실무 협상과정에서 북측 협상단은 아무런 결정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고, 결국 결정권자인 김정은을 직접 만났지만 양보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노련한 미 국무부 당국자들이 북한의 오래된 술책을 궤뚫어봤고, 협상 대표였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중심으로 트럼프에 대한 ‘집중 교육’에 나섰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북한은 시종일관 국무부를 협상 과정에서 배제하고 싶어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여러가지로 예측불가였지만, 그 덕인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하기 전에 제재를 풀어줄 수 없다’는 원칙만은 확고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뒤 김정은과 다시 협상에 나선다 해도 시작점이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지난 협상의 종료점이 ‘영변+α’였는데, 탁월한 협상가를 자처하는 트럼프가 이보다 못한 조건을 처음부터 내걸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그 사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통해 협상의 우위를 점했다고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트럼프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상황 달라진 노벨평화상 ‘떡밥’
하지만 이제 이조차 본인이 한 번 달성한 그림이 됐다. 이벤트 효과는 상쇄된 반면 높아진 기대 수준 충족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국제정세 또한 당시와는 다르다. 누구도 풀지 못한 최후의 글로벌 난제인 북핵 문제 해결은 그를 세계적 지도자로 역사에 남길 수 있었다. 2019년 하노이 노 딜 직전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2019년 2월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북핵 못지 않은 글로벌 복합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는 일찍이 재임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 화해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했다. 스스로 중동 문제에 ‘지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큰 만큼 북핵 문제보다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文과 尹 사이…한국 정부 변수도 커
북핵 대응에서 중국의 팽창 대응이라는 성격으로 진화한 한·미·일 안보 협력 역시 트럼프가 무조건 흔들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캠프 데이비드’라는 키워드는 쓰지 않겠지만, 중국을 제어하는 수단으로서의 3국 안보 협력 강화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역시 원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엔 미국이 아니라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과 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시도 등으로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가 3국 협력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윤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으로 한·일 관계가 정상화의 순풍을 타고 있다. 이를 토대로 단단해진 한·미·일 안보 협력을 굳이 깨는 것을 트럼프가 이득으로 여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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