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연 4% 은행상품’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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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월급통장 시절부터 자영업자가 된 뒤로도 들고나는 자금을 모두 넣어두고 이용하던 주거래은행의 지점 담당자가 권했던 연 4% 상품.
그러나 이제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는 설명에 사인을 하면서도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뒤늦게 깨닫게 된 그냥 은행 상품이 아닌 최악의 대가를 치르게 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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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월급통장 시절부터 자영업자가 된 뒤로도 들고나는 자금을 모두 넣어두고 이용하던 주거래은행의 지점 담당자가 권했던 연 4% 상품. 코로나19 시기 가게를 그만두고 수중에 남은 자금 2억원을 가지고 젊은 사람들처럼 주식을 잘할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그냥 예금에 넣어두는 건 손해인 것 같아 대안으로 제시받은 중수익(고수익 추구가 아니니 덜 위험하다고 생각된) 상품. 종목 투자가 아닌 해당 국가 증시 지수에 연계되는 거니 그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지수가 절반 이상 토막날 일은 거의 없다던 은행 직원의 설명대로 앞선 두 번의 경험에선 모두 일찌감치 조건을 맞춰 고마운 이자와 함께 돌아온 투자. 그러나 이제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는 설명에 사인을 하면서도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뒤늦게 깨닫게 된 그냥 은행 상품이 아닌 최악의 대가를 치르게 된 투자.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자인 70대 김진선(가명)씨에게 들은 ELS는 이런 상품이었다. 지금 와서 원금손실 위험을 정말 몰랐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저 발등을 찍고 싶다. 설명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금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수익을 바란 대가가 ‘원금까지 반토막 날 위험’이 되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은행이라는 판매처가 주는 안정감이 컸다.
ELS를 판매한 은행 직원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지점을 자주 방문하고 운용할 자산이 수천만원 이상 되는 고객이 저금리에 대안을 찾을 때 ELS를 제시했다. 어떤 구조로 수익이나 손실이 나는지까진 설명하지 못했더라도 ‘일정 구간만 유지되면 안정적 수익이 난다(반대로 그 조건을 충족 못하면 손실이 크다)’는 큰 틀은 충분히 설명했고 고객 대부분 어려워하지 않았다. 번거로운 서류작업도 일일이 다 했고,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도 모두 거쳤다. 은행 입장에선 예금·대출 금리 차이로 이자놀이만 한다는 비판 속에 판매수익을 다양화하는 길 중 하나였다. 금융 당국이 허가한 범위에서 판매한 ELS였지만 다시 불완전판매 논란의 늪에 빠졌다.
무려 16만명 넘는 이들이 은행을 통해 14조원 넘는 금액을 투자한 상품이 절반 이상 원금 손실을 경험하고 있거나 눈앞에 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은 ‘엄중 검사’와 ‘엄중 책임’을 내걸고 있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모펀드 사태 때와 비슷한 접근이니 금융사도 투자자도 일정 수준의 배상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의아한 건 이 사태 속에 투자자와 판매자(은행), 시장감시자(금융 당국) 세 주체 중 금융 당국만이 너무나 당당하다는 것이다.
ELS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2008년을 비롯해 2015, 2020년에도 가입자에게 불안을 안겼다. 그런데도 비슷한 일이 반복돼 결국 손실이 확정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원금 손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ELS 같은 구조화된 파생상품에 투자자로 준비되지 않은 대중이 가입해 손실 규모를 키웠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판매상품을 허가하는 당국이 그저 사후적 책임을 묻는 심판자로만 역할을 한다면 자기모순이다. ‘위험을 알면서 왜 투자했느냐’ ‘위험을 알면서 왜 팔았느냐’는 질문은 당국을 향해서도 가능하다. 위험을 알면서 왜 관리하지 않았고, 왜 판매를 허용했는가. 이번 사태에서 확인된 건 ELS 상품이 2003년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투자자가 그만큼 성숙했는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여전히 ‘돈을 맡기는 곳’으로 인식되는 은행에서 고위험 파생상품을 얼마나 팔아도 될지, 투자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부터 다시 들여다볼 시점이다.
조민영 경제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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