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정치인 테러, 자업자득 아닌가

김영선 2024. 1. 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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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정치부 기자

가장 큰 피해자면서도
피습마저 정쟁거리로 삼는
여야의 이 가벼운 행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까지 ‘정치인 테러’라는 끔찍한 일이 최근 한 달 새 2건이나 발생하자 문득 지난해 9월 21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될 때가 떠올랐다. 수많은 정치집회를 봤지만, 그때만큼은 왠지 모르게 살기가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표결이 있기 며칠 전부터 이 대표 극성 지지자들은 국회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기자 선배들과 국회 내 벤치에 앉아 비명(비이재명)계 대표주자 격인 모 의원과 담소를 나누다가 한 지지자가 불쑥 접근해 급하게 해산한 일도 있었다.

표결 당일은 무슨 시위 영화를 보는 듯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경찰의 통제 속에 국회 반대편 거리는 물론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완전히 점령했다. 국회와 가장 가까운 6번 출구는 일찌감치 문이 닫혔고, 지지자들은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며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국회경비대는 그 어느 때보다 출입증 검사를 철저히 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문을 통과했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순간 흥분한 지지자들은 무더기로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역에 방화 셔터가 내려지자 지지자들은 여기에 매달려 셔터를 힘으로 올리려 했다. 일부 지지자는 경찰을 때려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극성 지지자들의 폭력적 행동만으로도 살기와 공포감에 압도됐는데 이걸 실전에 옮기는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대표 피습은 누가 뭐래도 최근 정치권 뉴스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피습의 후유증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상당하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 대표 테러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천준호 비서실장이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속이 울렁거린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대표 외부 일정에 동행한 후배에게 “대표한테 너무 가까이 붙지 말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정치인 테러에 대해 정치인들도 ‘정치권 혐오’를 원인으로 꼽으며 양극단의 정치를 멈추자고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실제 행동을 보면 진심인지 의문이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 강제퇴장 사건을 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유가 어찌됐든 행사장에서 난동을 부린 행위에 대해 야당은 윤석열정부에 맞선 영웅적 행동으로 묘사했다. 여당이라고 다를까. 김진표 국회의장이 25일 본회의에서 대통령실의 과잉경호 문제를 지적하자 김 의장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유를 퍼부었다. 국회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개선하겠다고 ‘신사협정’이네 뭐네 하더니 바로 내팽개쳤다.

피습마저 정쟁거리로 삼는 여야의 행태가 ‘정치인 테러’라는 사건의 무게를 스스로 가볍게 하는 측면도 있다. 병원에 입원한 이 대표가 친명(친이재명)계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징계 수위를 놓고 정성호 의원과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은 “피습 후 이 대표의 첫 메시지가 ‘현근택은요?’인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 직후 ‘대전은요?’라고 말해 그해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걸 빗대며 이 대표를 비꼰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대표가 ‘부산은요?’라고 하면 어땠을까”라는 말이 조롱하듯 떠다녔다.

당장 배 의원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그간 정치권이 보여준 비난과 혐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19 헬기 불러 부산대병원 가야지” “서울대병원 안 가고 순천향대병원 가다니 소박하다” “배 의원 재선 확정” “정치인들 테러는 죄다 1㎝ 상처 수준이네”. 이쯤 되면 정치인 테러는 자업자득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정치인 테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정치인 본인이다. 가뜩이나 분노로 가득한 사회에서 그 분노의 타깃이 정치인들에게 쏠릴 가능성이 있다.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 모방범죄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진짜로 자성해야 한다.

김영선 정치부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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