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도둑을 도둑이라 부르면 유죄
지난해 유튜브를 통해 과거 학교폭력 피해를 폭로했던 표예림씨. 학폭 소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빗댄 ‘현실판 글로리’ 사례로 주목받았다. 학폭 피해 생존자 모임을 이끌던 그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등졌다. 2차 가해와 줄소송에 시달린 것이 이유였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유튜브를 통해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예림씨를 죽였다.” 이후 표씨의 변호사가 울분을 토하며 한 말이다. 허위 아닌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 것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다. 도둑을 도둑이라 불러도 죄가 된다. 표씨가 탄원서를 내고 국회를 찾아다니며 학폭 공소시효 기간 연장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했던 것을 떠올리면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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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드파더스' 대표 유죄 확정 판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다시 논란
세계적인 폐지 추세와는 거꾸로
」
최근에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들의 이름, 거주지, 직장명, 얼굴 등을 공개해 반향을 일으킨 사이트다. 사적 제재 논란에도 3년동안 900여건의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고, 2021년 양육비 미이행자에 대해 신원 공개 등 제재를 강화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에도 기여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법원은 구씨의 활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고 대법원도 ‘비방의 목적이 크다’고 봤다. 구 대표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비방의 목적이 크다’고 봤지만, 구씨가 재판을 받는 동안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지금은 여성가족부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단 여가부는 이름, 나이, 직업, 주소 등만 표기하고 얼굴, 직장명, 전화번호는 공개하지 않는다. 구씨는 배드파더스 대신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을 열어 얼굴 공개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 진실을 말해 형사처벌을 받는 나라는 아주 드물다. 관련 법 조항이 있더라도 폐지하는 추세다. 명예훼손 자체를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가 많지 않고,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게 한다. 미국은 일부 주에 명예훼손 형사처벌 규정이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예가 거의 없다. 독일은 허위 사실에 한해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한다. 유엔은 이미 우리나라에 명예훼손 자체의 비범죄화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보호하려는 ‘명예’는 진실을 은폐해 얻은 ‘가짜 명예’다. 무엇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피해자의 입막음용으로 악용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툭하면 소송을 남발하고, 가해자를 밝히는 순간 피해자가 범죄자가 돼버린다.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며, 미투나 학원 폭력ㆍ직장 내 갑질 사건 폭로, 사회 고발ㆍ감시 기능을 위축시킨다.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경우”에 한해 처벌의 예외를 두지만, 개념의 모호함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반면에 사적 제재가 창궐하고 쉽게 주홍글씨가 찍히는 인터넷 환경에서 이를 완전 폐지했을 때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피해가 생겨도 호소할 길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실 적시로 인해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되는 경우를 대비한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한 글에서 “유럽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법전에 남겨둔 경우도, 사람들의 평판 보호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 침해를 규제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드파더스 구 대표의 헌법소원을 대리할 사단법인 오픈넷은 “(대법원 판결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과잉성ㆍ위헌성을 드러냈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ㆍ 폐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논평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에는 7:2, 2021년에는 5:4로 합헌 결정을 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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