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어 클라우드도 규제…미·중 패권 전쟁터 된 AI
인공지능(AI)이 올해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섰다. 미국이 자국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에 해외고객 정보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중국을 상대로 ‘AI 통곡의 벽’ 쌓기에 돌입하면서다. AI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만큼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하는 클라우드 방식의 AI 학습을 막겠다는 취지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26일(현지시각)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미국 클라우드 기업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외국 고객의 신원을 확보하도록 하는 규정을 이르면 29일 공개할 예정”이라 밝혔다. 중국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 통제는 이미 지난해 7월부터 검토됐다. 앞서 엔비디아의 AI 반도체가 없어도 중국이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AI 훈련에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수차례 제기되면서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은 (중국에 대해) AI칩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이 이를 우회해 AI칩을 쓰는 미국의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사용해 자체 AI 모델을 학습시킨다면 (규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은 대중 제재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가 안보·경제 또는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는 기업에 안전성 테스트 결과를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편으로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인텔과 대만 TSMC·삼성전자 등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들에 수십억 달러의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며 반도체 성과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 7일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 이전에 대규모 보조금 지원에 대한 발표가 나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에 대한 추가 제재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마존·MS·구글은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이들 업체는 수익성 높은 클라우드 사업에서 그간 막대한 실적을 거둬왔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고객 정보를 손에 넣은 뒤 통제에 나서면 AI 인프라 투자를 늘려왔던 빅테크들의 클라우드 사업도 제한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물샐 틈 없는 제재에도 중국의 ‘AI 굴기’ 의지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 모양새다.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자체 AI 개발은 상당수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중국 클라우드 시장의 80% 이상을 알리바바·화웨이·텐센트·바이두 등 자국 서비스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 제재가 시작되면서 화웨이 등 자국 기업으로 AI칩의 주문처를 옮기거나 자체 시스템 구축에 돌입했다.
중국 자체 AI 모델의 영향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중국법인과 바이두 AI 클라우드는 갤럭시 S24 시리즈의 AI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화면에 원을 그리면 바로 검색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서클 투 서치’ 같은 최신형 AI 기능을 중국에서도 지원하기 위해 바이두의 거대언어모델(LLM) ‘어니’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갤럭시 S24 시리즈에는 삼성이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가우스’와 구글 제미나이·이마젠이 탑재됐지만, 중국 본토에선 당국의 제한으로 구글과 오픈AI의 AI 모델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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