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비 지원, 경로당 무상점심…‘실버 포퓰리즘’ 쏟아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최소한 선거철만 보면 그렇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은 지난 3일 대한노인회 방문이었다. 과거 비대위원의 ‘노인 비하’ 발언을 사과하기 위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총선 공약 1호는 노인층의 관심이 큰 ‘요양병원 간병비의 건강보험 급여화’다. 노인 표심(票心)이 선거철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60대 이상 노인 세대의 표심을 노린 ‘실버 공약’이 쏟아졌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2월 21일 국민의힘과 당정 협의를 거쳐 요양병원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민주당은 여기서 더 나아가 간병비 건보 급여화에 이어 ‘경로당 주 5일 무상 점심’을 공약으로 앞세웠다. 2040 표심에 호소하는 저출생·보육 대책을 총선 1호 공약으로 내건 여당에 비해 실버 공약에 더 힘을 싣는 모양새다.
공약이 노인층을 향하는 건 고령화 추세에 따라 노인 표심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다. 2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4월 총선에서 투표할 수 있는 18세 이상 인구 4438만 명 중 60대 이상이 1395만 명(31.4%)이다. 20~30대(1277만 명, 28.8%)보다 118만 명 많다. 총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 수가 2030세대를 역전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김형준(정치학) 배재대 석좌교수는 “60대 이상 지지율이 여당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야당이 실버 공약을 주도하고 있다”며 “간병비 급여화를 1호 공약으로 앞세운 건 야당 지지율이 높은 4050대 ‘집토끼’ 대신 60대 이상 ‘산토끼’를 공략하는 선거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간병비 급여화는 대표적인 실버 공약이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가 주로 머무르는 요양병원은 환자와 보호자가 간병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하루 평균 간병인 일당만 13만∼15만원이다. 한 달이면 4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야당은 간병비에 건강보험 또는 장기요양보험을 적용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간병비 급여화는 우리 당 공약이기도 하다”며 동조했다. ‘간병 지옥’이란 말까지 나오는 만큼 전문가들도 “방향은 잘 잡았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재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빠진 공약이란 점이다. 연간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47만5949명(2020년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 간병비 지출은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간병비에 건보를 적용하면 연간 최대 15조원의 재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건보 재정은 올해 적자로 돌아서고, 적립금은 2028년부터 바닥날 전망이다. 야당도 이런 점을 고려해 공약 적용 시점을 2027년 이후로 잡았다.
하지만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건보료 인상, 건보 낭비 요인 해소를 포함한 건보 개혁과 함께 단계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간병비 급여화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로당 무상 점심 공약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전국 경로당 6만여 곳에 양곡 구매비, 냉난방 비용 등을 절반씩 지원해 왔다. 여기에 급식 부식비와 조리·배식 인건비까지 추가 지원해 무상으로 점심을 제공하자는 내용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원 마련 대책을 함께 제시하는 ‘페이 고(pay-go)’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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