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 경계하는 美…중국에 사실상 '北 영향력 행사' 요청
미국이 중국을 향해 사실상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등 핵심 안보 이슈에 개입하는 데 따른 관리 차원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국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미국을 향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역으로 요구했다.
북한에 대한 논의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26~27일 태국 방콕에서 진행한 12시간 마라톤 회담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 이후 2개월만에 만난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남중국해, 대만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 이 가운데 북한 문제가 포함됐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27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미국은 최근 북한의 무기 시험과 북·러 관계 증진이 김정은의 의도와 관련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해 이런 우려를 중국에 직접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은 분명히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이 그 영향력을 북한이 비핵화의 경로로 복귀하는 데 사용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 외에도 이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함께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는 하마스는 물론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명목으로 홍해에서 상선을 공격하는 예멘 후티 반군과도 긴밀한 관계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교역국으로 이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를 종속시킨 뒤 북한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와 유사하다.
결국 미국이 중국을 향해 이란과 북한에 대한 역할을 요청한 것은 최대 안보 현안이자 각각 이란과 북한이 개입돼 있는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전쟁을 관리하려는 의도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외교 소식통은 이날 통화에서 “최근 미국이 북한을 언급하는 배경에는 러시아에 대한 전쟁 무기 공급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며 “특히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으로선 북한의 선을 넘는 우발적 도발은 행정부에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고위 당국자 역시 “미·중이 경쟁 관계에 있지만 갈등이나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며 강공 일변도의 기존 기조와는 온도차가 나는 표현을 썼다. 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올봄 전화로 정상회담을 하게 될 것”이라며 상황 관리를 위한 정상 차원의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시사했다.
사실상 미국의 도움을 요청 받은 중국은 현 상황을 최대한 외교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중국 외교부는 “중동, 우크라이나, 한반도, 남중국해 등 국제 문제를 논의했다”며 비교적 상세히 미·중 고위급 접촉 내용을 알렸다. 특히 한반도 문제가 공식 논의 주제에 포함됐는데, 이는 지난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유선 회담 때 관련 논의 사실을 숨겼던 것과는 차이가 난다.
이어진 발표문에도 외교적 계산이 깔린 듯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왕이 부장은 “높이 앉아 내려보지 말고, 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두어야(求同存異·구동존이) 한다”며 “갈등을 부각해선 안 되며, 상대의 핵심이익을 성실히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만의 평화와 안정에 가장 큰 위험은 대만독립이며 미·중 관계의 최대 도전 역시 대만독립으로, 미국은 중국의 평화 통일을 지지해야 한다”며 역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요청 받은 북한 문제에 대해선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았다. 논의는 했지만, 추가 설명을 피하는 방식은 그동안 중국 외교 당국이 회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 사용해 왔던 전형적인 중국식 서술 방식이다. 반면 미국 측은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 박명호 외무성 부상과 만난 사실을 거론한 뒤 “다음 행보는 돌아온 부부장과의 통화가 될 것”이라며 북한과 관련한 중국과의 추가 논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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