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남는 장사가 된 사기범죄
요즘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인 ‘통장묶기’, 일명 ‘핑돈’ 사기가 성행한다고 한다. 이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제3자의 계좌에 소액 입금하고, 이를 근거로 신고하여 해당 계좌를 거래정지시키는 수법이다. 이 사기 유형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을 악용한 새로운 금융범죄 수법이다. 이 법에 따라 은행은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해야 한다. 물론 신고인(사기꾼)이 요청하면 지급정지를 바로 풀 수 있지만, 신고를 당한 피해자(제3자)가 지급정지를 바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피해자는 금융당국에 피해를 신고하고 여러 절차를 거쳐서 어찌어찌 구제신청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미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이고 그동안 겪게 되는 지급정지로 인한 피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사기꾼들은 이 점을 이용해서 통장이 묶인 피해자에게 접근해 현금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면 신고를 취하해 준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수개월 동안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통장의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짐으로써 생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은 2401건 중 1556건(64.8%)의 범죄자가 사기 전과자였다고 한다. 사기꾼 3명 중 2명이 재범인 셈이다. 그리고 사기 전과자 4명 중 3명은 이전과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쳤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기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뭘까.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는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에 대한 해답을, 모든 인간은 자신의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적 사고에서 찾았다. 이를 토대로 범죄 행동 역시 비용과 편익에 기반을 둔 경제 행위의 일종으로 봤다. 즉 범죄를 통해 얻는 이득이 체포, 유죄판결 및 처벌의 가능성보다 높다면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인간을 비용·편익에만 반응하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사기’로 대표되는 민생 침해 범죄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그의 주장은 안성맞춤이다. 우리나라에서 사기범죄를 저질러 받을 처벌과 얻을 돈을 따져보면 사기 치는 게 훨씬 많이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사기 금액이 1억원 미만일 시 징역 6월~1년 6월, 1~5억원일 시 징역 1~4년, 5~50억원일 시 징역 3~6년, 50~300억원일 시 징역 5~8년, 300억원 이상일 경우 징역 6~10년을 양형기준으로 정하고 있고, 가중처벌이 돼도 최대 형량이 징역 13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걸리지 않는 사기 사건이 훨씬 많고, 설사 걸렸다 하더라도 피해금액 중 일부를 주고 합의만 하면 실형을 면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장사’가 아니겠는가. 이러니 사기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란한 언변으로 다시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어슬렁거리게 된다.
물론 엄벌주의가 능사는 아니다. 엄벌주의가 출소 후 재범률을 낮춘다거나 다른 범죄 꿈나무들의 범죄율을 낮춘다는 통계학적 근거도 없다. 그러나 현재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사기천국 대한민국에서 사기 폭주에 제동을 걸 조치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현재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고 하지만, 이는 피해자 구제의 한 방법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사기 범죄를 통해 얻는 이득을 철저하게 박탈하고, 그 이상의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한다면 과연 ‘사기는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게 될까. 이제라도 사기가 남는 장사가 아님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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