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日시민들 나섰다…"역사 등 돌리는 만행"
“공사를 위해 1월 28일 오후 5시 30분부터 2월 12일 오전 8시까지 공원을 폐쇄합니다.”
28일 오후 일본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시에 있는 ‘군마의 숲’ 공원. 입구에는 공원 일시 폐쇄를 알리는 알림판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 지역 주민들의 대표적 휴식 공간인 공원을 2주 간이나 폐쇄하는 이유는 공원 한쪽에 설치된 ‘군마현 조선인·한국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 철거작업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철거 공사를 앞두고 이날 추도비 앞에는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 등 100여 명이 모여 마지막 추도회를 열었다.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이시다 마사토(石田正人·71) 대표는 이날 행사에서 “이 비석은 역사의 생생한 증거이자 한·일 우호의 상징”이라며 “군마현이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비석을 철거하는 것은 역사에서 등을 돌리는 만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콘크리트 원형 받침 위 가로 4.5m, 세로 1.95m 크기로 세워진 비석 앞면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적혀 있다.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이 세워진 건 2004년이다. 당시 시민단체들이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의 기록을 조사해 당시 군마의 광산과 군수공장 등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약 6000여 명이었음을 밝혀냈다. 이 가운데 300~5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시민단체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건립하면서 군마현과 “비석 앞에서 정치적 집회를 열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2012년 추도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강제 연행”을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 비석 설치에 반대해왔던 지역 극우단체들은 이 발언이 “일본 정부 입장과 다른 정치 발언”이라며 군마현에 철거를 요청했고, 군마현은 이를 받아들여 2014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시민단체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이어갔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2022년 갱신을 불허한 지자체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군마현은 공원을 전면 폐쇄하고 추도비를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실시한다. 일본 전역에 최소 150개가 넘는 조선인 관련 추모비가 있지만, 지방 정부가 직접 철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추모식엔 우익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소리를 지르며 방해해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 200여 명이 동원됐다.
철거가 시작된 후에도 시민단체는 계속해서 반대 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시다 대표는 “당시에 조선인 다수가 강제연행됐다는 기록은 무수히 많다. 비석이 사라진다 해도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석 철거에 대해 한국인과 한국 정부도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철거 반대 움직임은 일본 내에서 확산하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비석 존치를 요구하는 예술가들이 시민 4300명분의 서명을 모아 군마현에 제출했다. 이 서명에는 현대미술가인 이이야마 유키(飯山由貴), 유명 팝아티스트인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 등이 참여했다.
다카사키(군마)=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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