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건 건들라…사법농단 무죄에 여야 '선택적 침묵'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서 1심 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선택적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양당은 법원의 1심 판단이 나온지 이틀이 지난 28일까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여야 대변인이 각각 지난 27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짧게 답한 게 전부였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면서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사법부 장악에 대한 사법부의 정당한 판결이었다”고 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시 50여명의 검사들 투입하고 5개월간 수사를 지휘하고 담당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이 문제에 대해 입장 밝히는 것이 순서”라고 답했다.
사회정치적으로 파장이 큰 재판 결과를 비판의 수단으로 삼던 통상의 모습과는 다른 행태다. 법원이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논란에 대해 MBC에게 정정보도를 명령한 1심 판결 직후 여야가 당 대변인과 원내대변인 공식 논평으로 서로를 비판하던 것과도 대조적이었다.
이같은 양측의 침묵에는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해 좋을 것이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사법농단 의혹을 직접 거론하며 ‘하명 수사’ 논란을 키운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은 사법농단 수사를 이끈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책임론이 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정광재 대변인은 한 위원장이 당시 수사를 지휘했다는 지적에 대해 “한 위원장의 별도 입장은 없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기소한 거로 안다”라며 “검찰은 검찰의 역할을 충실히 진행했던 것”이라고만 답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도 ‘당시 수사가 사법장악 시도였다’라는 지적에 대해 “직접 수사한 분들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다른 해석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한 위원장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사법농단 수사팀 팀장을 맡아 같은해 6월부터 이듬해 2월 양 전 대법원장 기소까지 수사팀을 지휘했다. 당시 수사팀은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서 “강제징용 재판개입과 법관 사찰, 헌법재판소 기밀 누설 등 단순 지시 보고를 넘어 직접 주도하고 행동한 것이 진술과 자료 통해 확인됐다”라며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의 정점이라고 적시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은 수사 초반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연이어 기각하자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라는 입장문을 냈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9월,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라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검찰의 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도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필요하고,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당시 민주당은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을 규탄하며 국정조사와 법관 탄핵 추진 등으로 법원을 향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힘을 보탰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최초 폭로한 이탄희 의원,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한 이수진 의원은 ‘사법농단 피해자’라는 명분에 힘입어 21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영입 방식으로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탄희 의원은 이번 양 전 대법원장 1심 무죄 판결 직후 “재판개입 사실이 인정된다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까”라며 “양 전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라고 따졌다. 이수진 의원은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심 판결만 보면 당연히 공세를 펼쳐야 하지만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은 부담”이라며 “민주당에서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어서 공식 논평으로 대응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언급하는 게 맞는가 싶다”라며 “수사했던 사람은 한 위원장이지 당이 아니라서 연관된 게 없지 않나. 굳이 입장을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훈·김정재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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