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젖에 이물감... 편도암을 시작으로 찾아온 우울증

이혁진 2024. 1. 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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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질병에 따른 우울증, 용케 잘 버텨내고 있지만 사회적 대책과 보살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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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드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른바 65세 이상이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겪으며 느낀다는 '노인우울증'이다. 70세인 내 주변을 보면 실직이나 사별 등으로 우울증을 앓는 지인들이 제법 많다. 혼자 사는 노인 1인가구도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들이 겪는 노인우울증을 사소하게 볼 수는 없다. 이런 우울증은 사실 뇌졸중이나 암 등 질병과 함께 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평생 5명 중 2명이 암으로 싸운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예고없이 만난 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11월, 목젖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동네병원을 들렀더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란다. 그 결과 나온 '편도암'이라는 진단에 화들짝 놀랐다. 보다 자세한 PET(양전자단층촬영) 검사 역시 암이었다. 웬걸, 이 검사에서는 신장암이 추가로 발견됐다.

신년 사업구상을 마무리할 때라서 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나는 암이라는 판정을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특별한 전조현상도 없었고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암 진단을 받고도 한동안 치료를 망설였다.

내가 환자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래가 막막했다. 당시 암은, 수술 이후 항암치료 기간 등 예후에 대해 의사들도 희망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또 다른 판단을 얻기 위해 여러 검사를 거듭해 받으면서 두 달이 흘러갔다. 결국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민하고 방황했지만, '항암치료를 받아보자'는 가족의 완강한 권유를 외면할 수 없었다.

환자라는 걸 인정하고 병상에 누워 수술 일정을 기다렸다. 침대 위에서야 비로소 내가 장기간 사투를 벌여야 하는 암환자라는 처지, 그리고 건강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새삼 깨닫는다.
 
 항암주사 장면
ⓒ 이혁진
 
신장암을 제거하고 이어 편도암 수술을 진행했다. 이후 통증을 수반한 방사선치료와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그 과정에서 체중이 20kg나 줄고 체력은 바닥났다. 그새 설상가상 신장암은 방광암으로 전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용케도 그 뒤로 2년간, 지금까지 매달 3가지 암으로 한 달에 네댓 번 검사와 항암치료차 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병원 갈 때마다 재발과 전이의 두려움 탓에 사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기분이다.

확실히 낫는다는 보장이 없어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말수도 자연히 적어지고는 한다. 높아진 스트레스, 자기 연민에 빠져들며 나도 모르게 지쳐만 갔다. 암 치료의 고통보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정신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느낀다. 

내 경우 우울증은 주로 항우울제 약물로 치료하고 있다. 거기에 매일 몇 시간씩 꾸준히 걷고 있는데, 이것도 우울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 의료진에 따르면 신경안정제는 우울증 극복에 효험이 크고 중독현상도 거의 없다고 한다.
 
 매일 독서와 글쓰기, 걷기를 한다. 우리 부부의 워킹운동화
ⓒ 이혁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불안하다가도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행복한 순간이 있다. 어느새 하루 일과 '루틴'으로 자리 잡은 새벽시간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이 시간만큼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온전히 자신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이렇게 삶을 새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는 고독과 외로움으로 사라졌던 용기마저 다시 샘솟는 것 같다. 당장은 고통과 슬픔을 잊기 위한 삶이라 해도, 죽을 때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짧지만 강렬하게 통과한 질병, 아픈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많은 걸 깨달았다. 먼저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이는 투병의 의지를 불태우는 동력이지만, 동시에 더는 짐이 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독서 자료사진
ⓒ 픽사베이
병상을 지키는 지혜로운 아내에게는 종종 죄인이 된 심정이 든다. 내 투정과 허세를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제는 '당신은 마음만 부자'라는 아내의 핀잔도 내게는 사랑스럽게 들린다.

2022년 투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전엔 하지 않았던 설거지와 집안 살림도 배우고 있다. 음식 만들기가 치료에도 좋다. 아내의 손때 묻은 그릇을 만질 때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 같이 소중하고 평범한 생활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 그리고 나만 바라보고 계신 구순을 넘기신 아버지를 위해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소명감은 내가 사는 존재 이유가 돼 준다.  

병을 널리 알리라고 했지만 나는 이런 질병을 집안 식구 외에는 외부에 내색한 적이 없다. 자존심 탓이다. 나중에야 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내 등짝을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사쓰기를 통해 알량한 자존심을 고백하는 것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암주사실
ⓒ 이혁진
 
병원 항암주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긴장감과 초조함 등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똬리를 튼다. 이제는 증세가 오래된 우울증이지만, 이것도 지나가려니 하고 열병쯤으로 여기려 노력한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지난해 12월 작은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암이 발병하고 아들 결혼식 때까지 과연 살 수 있을까 부질없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결혼식을 지켜봤다. 나를 기억하고 찾아준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해야 할 은혜를 발견한 것도 큰 기쁨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고백하건대 20년 전에도 나는 대장암 말기로 고생한 적이 있지만 완쾌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 혼자 외롭게 있는 게 아니고, 든든한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생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낀다.

2017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4명 중 1명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앓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는 절반에 불과했다고 한다(닐 런트 교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나는 한국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할 것이다. 

그러나 암이 더는 불치병이 아니듯 노화와 질병에 따른 우울증도 그렇다. 약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시대다. 100세 시대, 노인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나오는 만큼, 노인 우울증과 독거노인의 외로움 또한 사회적 대책과 보살핌이 필요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가 들며 몸·마음이 아픈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혹시 질병이나 노화로 고생하면서 우울하거나 괴로움을 겪는 독자들이 계시다면, 희망과 용기를 가지시라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상심할 필요가 없다. 나 같은 사람도 버티며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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