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담비 '의자춤' 만든 무용수 출신 제작자... ‘세븐틴’ 음반 신기록 썼다
서른 살에 보아 매니저로 시작해 2007년 플레디스 설립
하이브 레이블로 편입 후엔 콘텐트 제작자로
그룹 세븐틴이 지난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38회 골든디스크 어워즈에서 음반대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데뷔 9년 만에 받은 첫 대상이었다. 세븐틴은 '포스트 BTS(방탄소년단)'로 꼽히는 남자아이돌 그룹 중 하나다. 12회에 걸친 일본 5대 돔 투어 공연에서 51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고, 미니 10집 ‘FML’은 K팝 역사상 최고 음반 판매량인 554만6930장(써클차트 기준)을 기록했다. K팝 그룹 최초로 유네스코 본부에서 연설하고 공연도 펼쳤다.
데뷔 초 세븐틴은 “멤버가 많아 밥값이나 벌겠느냐”는 소리를 들었던 가요계 별종이었다. 13명의 그룹인데다 그 안에 세 개의 팀(보컬·퍼포먼스·힙합팀)을 두고 파트별 자체 제작을 하는 등 대형기획사도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을 했다.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한 이는 한성수 마스터프로페셔널(MP, 플레디스 창업자·52)이다. 미국 매거진 뮤직 비즈니스 월드와이드는 그를 ‘월드 리더’로 조명하기도 했다.
한MP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범상치 않은 사람'으로 불렸다. 국립무용단 무용수로 활동하다 나이 서른에 돌연 SM엔터테인먼트에 취직한 이력도 독특하지만, 2007년 플레디스를 설립한 후의 행보도 남달랐다. 손담비에게 의자춤을 직접 만들어 줬고, 애프터스쿨엔 멤버의 입학과 졸업이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렌지캬라멜은 ‘B급 감성’을 겨냥해 대박을 쳤다. 작은 회사에서 가수들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한MP는 가요계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역주행으로 차트 1위에 오른 한동근, 10년 차에 재조명 받은 뉴이스트, 그리고 세븐틴과 유닛 부석순까지 한MP의 성공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남녀 솔로, 남녀 그룹, 남녀 유닛까지 모두 성공시킨 기록 또한 갖고 있다. 지난 22일엔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보이그룹 투어스(TWS)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플레디스가 2020년 하이브 레이블로 편입된 후, 한MP는 경영보다는 제작자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25일 서울 용산 하이브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회사 위기일 때 데뷔한 세븐틴, 성공 확신했다”
Q : 세븐틴이 대상을 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A : 9년 차에 받아 더욱 뿌듯하고 의미가 깊었다. 멤버들은 서로의 돈독함이나, 프로페셔널한 마음가짐 같은 게 강해지고 있다.
Q : 세븐틴 데뷔 전 연습생 수가 직원 수보다 많았던, 위기 상황도 있었는데.
A : 세븐틴에 대한 확신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를 것 같다’는 강한 믿음이 생길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여전히 끝을 예측할 수 없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세븐틴과 팬덤 모두에게 고무적인 일이다.
일본 5대 돔투어는 일본인 멤버 없이 이뤄낸 성과다.
A :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멤버가 있다고 해서 그 지역에서 100%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세븐틴은 13명이라는 멤버 수 자체가 모험이었다. 기본이 탄탄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 봐도 다르구나 느낄 정도로 연습을 시켰다. 그랬기에 4시간 투어를 소화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팀이 됐다.
세븐틴은 다국적 멤버 전원이 재계약에 성공한 최초 사례다.
A : 다인원이다 보니, 그들 간의 의견 조율에 더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또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을 계속 상기시켰다. 어떤 작은 일도 모두의 도움과 협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임을 알려줬다. 이런 생각이 팀 내에 내재화된 것 같다.
“좋은 제작자란 밑그림을 잘 그리는 것”
Q : 남녀 솔로·그룹·유닛 모두 1위를 경험했다. 본인 안목에 자신이 있었나.
A : 그때의 상황과 트렌드에 맞춰 기회를 잡고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 통했다. 장기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은 편이다. 돌이켜보면 안목이 있고 그 예상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지금도 주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안목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에서 기획한 콘셉트나 음악을 ‘입을’ 사람을 찾기보다는 고유한 매력을 가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을 찾으려 한다. 아티스트가 본연의 에너지를 드러낼 때, 그것이 개성이 되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꾸며낸 이미지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Q : 하이브 편입 후 바뀐 제작 환경은 어떤가.
A : 콘텐트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돼 업무 환경은 좋아졌다. K팝이 폭발적인 성장을 했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아티스트를 한 번에 좋아하게 만드는 만능키 전략은 없을 것이다. 세븐틴이 글로벌로 팬덤을 확장하며 성장한 것처럼 콘텐트의 완성도, 아티스트의 성실함과 실력이 중요하다.
Q : 요즘 시대에 부합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은.
A : K팝 소비자의 본질적인 특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소비자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현 시점에서는 마이너한 시도일지라도 과감히 진행하는 결단력도 지녀야 한다. 소수가 외면받지 않고 오히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시대인 만큼, 색다른 형식으로 끊임없이 메이저 시장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개척자가 요즘 시대의 프로듀서라고 생각한다.
Q : 예전에는 세븐틴 안무 지도도 했는데 지금도 계속 하나.
A : 큰 틀에서의 디렉션을 주는 정도다. 성장한 멤버들에게 세세한 디렉션을 주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실이나 촬영 현장에 직접 가지 않았는데, 최근 ‘손오공’ 때는 직접 가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Q : 새로 론칭한 그룹 투어스는 본인의 철학에 부합하는 팀인가.
A : 자연스러운 모습, 가공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멤버들과 나눴다. 투어스는 ‘바로 지금’을 반영하는 팀이다. 데뷔는 평가 과정 영상을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연습량도 많고 평가가 부담되지만 멤버들끼리는 친구가 돼서 그들만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경쟁은 치열해도 함께 하는 것의 행복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요즘 아이들이 경쟁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라 생각했고, 투어스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유니크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선 멤버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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