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리더·분위기메이커 1인3역...'토너먼트 모드' 변신 손흥민

피주영 2024. 1. 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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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모드'로 변신한 캡틴 손흥민. 뉴스1

2022 카타르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2 충격패를 당했다. 그러자 많은 전문가는 아르헨티나를 우승 후보에서 제외했다. 아르헨티나는 예상을 뒤엎고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2016 유럽축구선수권에 나선 포르투갈도 아르헨티나와 사정이 비슷했다. 포르투갈은 조별리그에서 3무승부에 그쳤다. 조 3위로 간신히 16강 토너먼트에 올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챔피언이 돼 '50년 무관의 한'을 풀었다.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의 공통점은 뛰어난 실력은 물론 강한 카리스마와 동료를 품는 리더십까지 겸비한 선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대회 초반 흔들린 팀을 다잡고 우승까지 이끈 주인공은 바로 수퍼스타 리오넬 메시(37·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포르투갈)다.

카타르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든 메시. AFP=연합뉴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한국 대표팀에도 메시, 호날두와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캡틴' 손흥민(32·토트넘)이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31일 오전 1시(한국시간)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와 16강 맞대결을 벌인다.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도 대회 초반 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클린스만호는 바레인(3-1승), 요르단(2-2무), 말레이시아(3-3무) 등 한 수 아래 전력의 팀들과 맞붙은 조별리그에서 6실점 하며 1승 2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특히 조별리그 3차전에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에 고전 끝에 3-3으로 비기는 굴욕을 겪었다. 개막 전 수퍼컴퓨터로 계산한 우승 확률에서 2위(14.3%)를 차지한 한국은 조별리그가 끝난 뒤엔 5위(11%·옵타 기준)로 내려앉았다.

말레이시아전에서 폭발적인 드리블을 시도하는 손흥민(오른쪽). 연합뉴스

패하면 그대로 짐을 싸야 하는 16강 토너먼트를 앞두고 그동안 잠잠하던 손흥민이 움직였다. 손흥민은 말레이시아전 최우수선수(MOM)로 뽑힌 뒤 기자회견에서 "많은 팬이 온라인, 소셜미디어에서 조금 선 넘는 발언을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면서 "(우리는)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간이다. 선수들을 흔들지 말고 보호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은 (팬들의 원하는 경기력 수준을) 만족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수들을 조금만 더 아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클린스만 감독과 선수들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직접 나서서 동료들을 감싸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면모를 보였다.

대표팀 훈련에서 골키퍼로 깜짝 등장한 손흥민. 연합뉴스

말레이시아전 후 첫 훈련이 열린 지난 27일엔 '분위기 메이커' 손흥민으로 변신했다. 본격 훈련을 앞두고 이뤄진 '몸풀기 슈팅'에서 손흥민은 골키퍼로 깜짝 등장했다. 그는 두 팔 벌려 과장된 몸짓으로 슈팅을 막는가 하면 슈팅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넘어졌다. 서른둘 주장이 펼치는 '몸 개그'에 동료들은 막내의 재롱을 보는 것처럼 밝게 웃었다. 가라앉았던 팀 분위기도 덩달아 살아났다. 손흥민은 이후 훈련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로 동료들을 이끌었다.

가장 든든한 점은 클린스만호의 에이스 손흥민이 '토너먼트의 고수'라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에서 손흥민만큼 토너먼트 대회 활약 경험이 많은 선수도 없다. 손흥민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로 출전해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토너먼트 무대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손흥민. 연합뉴스

소속팀 토트넘을 '꿈의 무대'로 불리는 유럽 챔피언스리그(2018~19시즌·준우승) 결승에 올린 경험도 있다.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와의 대회 8강 2차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손흥민의 활약상은 지금도 토트넘 팬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2016~17시즌)에선 득점왕(6골)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토트넘은 준결승까지 올랐다. 아시안컵에서도 맹활약했다. 손흥민은 2015년 아시안컵(한국 준우승) 호주와의 결승에서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본격 '토너먼트 모드'에 들어간 손흥민을 두고 영국 토크스포츠는 "존재만으로 수많은 팬심을 움직이는 선수"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도하(카타르)=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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