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아이들의 우상' 윤복진의 숨겨진 곡, 세상에 나온다

백경서 2024. 1.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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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찍은 아동문학가이자 동요시인인 윤복진의 사진. [사진 대구시]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로 알려진 『기러기』(1927년)의 일부다. 이 동요는 제목이나 가사가 여러 번 바뀐 기구한 운명을 갖고 있다. 일제 때 아동문학가이자 동요시인인 윤복진(1907~1991년)이 작사했고, 박태준(1900~1986년)이 작곡했다. 윤복진은 소파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로 등단했고, 주요 일간지 등에 작품을 꾸준히 실으면서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다만 그가 1950년 월북하면서 『기러기』는 금지곡이 됐다. 이후 『가을밤』, 『찔레꽃』 등으로 제목이 바뀌고 노랫말도 달리 불려 왔다.

그가 쓴 동요집 중 돌아오지 못한 작품은 더 있다. 『중중때때중』(1931년)과『양양범버궁』(1932년)이다. 존재는 알려져 있으나 책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수록곡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작곡집이 『돌아오는 배』(1934년)다. 오랜 세월 실물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이 작곡집이 세상에 공개된다. 오는 30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열리는 ‘동요의 귀환, 윤복진 기증 유물 특별전’에서다.

오는 30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열리는 ‘동요의 귀환, 윤복진 기증 유물 특별전’에서 최초 공개되는 윤복진의 『돌아오는 배』 표지. [사진 대구시]

대구시는 29일 문화예술 아카이브(Archive) 구축 과정에서 수집하고 기증받은 자료 가운데 일제시대 문화예술 활동 자료를 전시한다고 밝혔다. 동요작사가 윤복진의 습작노트·동시집과 작곡가 박태준·홍난파·정순철의 작곡집이 공개된다. 또 이들이 서울·대구·평양·일본에서 활동한 자료와 대구 최초 민족 자본 백화점인 무영당백화점을 중심으로 예술인이 교류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윤복진 유족을 어렵게 설득해 자료를 기증받아 연구·분석한 결과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대구시 설명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윤복진은 어린이 인권과 민족정신 함양을 위해 윤석중·서덕출 등 아동문학가나 박태준·홍난파 등 작곡가와 함께 활동하며 신문·강연을 통해 동시와 동요를 보급했다. 다만 그가 조선문학가동맹 소속 문학인들과 월북하면서 자취와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구시는 그의 작품을 기증받기 위해 유족을 설득했다.

그간 지역 문화예술 연구가를 중심으로 윤복진 자료 공개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팀장과 남지민 주무관이 나섰다. 2020년 관계자들이 유족을 만났지만, 유족은 “아버지가 ‘사흘 뒤 오겠다’며 집을 나선 이후로 월북해 돌아오지 않았다”며 “이후 감시로 힘들었고, 공직에 있는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윤복진 자료의 중요성을 눈여겨 본 사람들이 늘어났고, 2년간 삼고초려 끝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유족은 조심스레 작곡집 『돌아오는 배』도 건넸다. 대구시는 유족이 기증한 유물 300여 점 중 일제강점기 소년문예운동 자료 60여 점을 선별해 전시한다.

오는 30일에 열리는 전시 개막식에는 윤복진 유족, 원로예술인, 박태준기념사업회 회장 등이 참석한다. 이 행사에서 윤복진의 유족에게 감사패를 증정한다. 조경선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기증자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근대 문화예술 자료의 기증 문화가 선순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시에 담았다”라고 말했다.

'동요의 귀한' 포스터. [사진 대구시]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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