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 부부와 함께한 대구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

정수근 2024. 1. 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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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생태환경위원장·30여명 시민 참여... "생명들 위해 나서자"

[정수근 기자]

 팔현습지 하식애 앞에 30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27일 오전 11시 30분 대구 팔현습지 안의 하식애와 하천숲이 만나는 끝에 깔아놓은 넓은 나무데크 위에 3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바로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 현장이다. 이날 미사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10여 개 성당의 생태환경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위원장들과 신자들 그리고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모였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 현장

이들은 먼저 오전 11시에 이곳에 모여 하식애 절벽의 한쪽 모서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수리부엉이 부부의 놀라운 모습을 망원경으로 난생처음 살펴본 후 팔현습지의 또 하나의 명물인 왕버들숲으로 갔다.

수령이 300년이 넘은 왕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원시 자연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그 숲에서 이곳에서 곧 일어나게 될 토건 '삽질' 소식(하식애 절벽을 따라 8미터 높이의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보도교 공사가 예정돼 있다. 관련 기사 : 올해 팔현습지서 시작될 일... 수리부엉이가 걱정됩니다)을 듣고는 모두들 하나같이 강하게 성토했다.
 
 30여 몀의 천주교 신자들이 팔현습지 왕버들숲에 들어서 "금호강 팔현습지 삽질을 멈춰라!" 외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들은 이곳 왕버들의 특징인 여러 다발로 자라난 한 왕버들 앞에서 모두 모여서 함께 외쳤다.

"금호강은 야생동물이 집이다. 금호강 팔현습지 삽질을 즉각 멈춰라!!"

왕버들숲을 뒤로 하고 이들은 다시 팔현습지 하식애 앞 나무데크에 모여서, 수리부엉이 부부가 둥지를 튼 팔현습지 하식애 절벽을 병풍 삼아, 팔현습지와 이곳의 뭇 생명들을 위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했다(관련 기사 : 장엄한 팔현습지의 아침... 이곳의 평화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

천주교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임성호 신부의 주례로 열린 생명평화미사는 팔현습지의 왕버들 나무와 잔잔한 바람과 겨울 철새들의 청아한 울음 소리가 함께했다. 며칠 반짝 추위가 물러가고 새봄이 온 것처럼 포근한 날씨여서 야외 현장 미사를 올리기 참 적당한 날이었다. 하식애에 둥지를 튼 수리부엉이 부부가 내려보고 있는 가운데 미사는 봉헌됐다.

임성호 신부는 강론에서 팔현습지의 뭇 생명들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나서자"며 다음과 같이 강론을 펼쳤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에서 강론하고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임성호 신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임성호 신부가 팔현습지 안에서 열린 생명평화미사에서 축원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우리는 건물 안에서가 아니라, 글자 속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버드나무와 또 비둘기와 새소리 또 이곳에 있는 모든 하느님의 피조물들과 함께 우리는 그 친교의 삶을 살면 좋겠고 우리 교구가 지니고 있는 친교에 대한 체험과 힘을, 공동체의 힘을 온 피조물과 함께 나누고자 올 한 해는 이곳에서 우리 생태환경위원회 모든 분들과 함께 그런 친교의 삶을 시작하고, 오늘이 그 출발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 애써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힘을 모아서 우리도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뜻을 모아서 버드나무는 입이 없지 않습니까? 입이 있는 유일한 우리가 버드나무의 입이 되어주고, 백로의 입이 되어주고, 또 얼룩새코미꾸리의 입이 되어서 이곳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했으면 좋겠습니다."

팔현습지의 뭇 생명들과 먼저 친교를 나누고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입이 되어서 그들이 전하는 바를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대신 전하자는 것이다. 즉 임 신부의 강론은 여기 모인 "우리가 팔현습지의 친구가 되자"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날 미사는 곧 팔현습지와 친구 맺기의 시간인 셈이다. 이른바 '팔현의 친구들' 결성식이 열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팔현습지 뭇 생명들을 위해 우리가 나서자"

'팔현의 친구들 결성식'과 같은 임성호 신부의 강론이 끝나자 신자들의 기도가 이어졌다. 현장에서 즉석해서 신자들이 나섰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에서 신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구 공동의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인류 공동의 집 지구의 파괴되고 있는 생태환경을 살펴주시어 언제나 저희들이 이곳을 살피고 보살펴주고, 모든 지구인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어 또 다른 신자가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국민들과 대구 시민들과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저희를 비롯한 우리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 위정자들이, 환경부장관이 우리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 아름다운 습지를 지킬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

그들의 기도처럼 이날 미사는 대구시장과 환경부장관이 이 어리석은 삽질을 부디 중단해주기길 간절히 빌어본 시간이다. 이날 모인 이들의 기도가 마중물이 되어 대구의 더 많은 성당의 신자들에게 생명평화의 땅 팔현습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기의 소식이 전해지고 그래서 '팔현의 친구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팔현습지에 계획된 환경부발 '삽질'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환경부가 환경부이기를 포기하고 벌이는 이 어리석은 삽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시민들이 관심과 저항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시민들의 참여는 이 어리석은 탐욕의 삽질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는 이 백신을 생산해 널리 퍼트리는 시간인 것이다.
 
 미사가 끝이 나고 참석자들이 인사와 소감을 나누었다. 이들이 바로 '팔현의 친구들' 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이승렬 대표가 그간 팔현습지의 싸움의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팔현습지에 관련된 생태환경 문제에 대해서 대구환경운동연합와 '금호강 공대위' 등과 함께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저희가 모였습니다. 그래서 참고로 말씀드리면 가급적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이 장소 팔현습지에서 생태환경 미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3월 23일(토) 확정돼 있고요. 역시 2월 넷째 주에도 잠정적으로 미사를 하기로 결정돼 있으니까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은 여기서 미사 겸 줍깅도 하겠습니다. 그러니 생태환경위원분들뿐만 아니고 각 본당의 신자분들 많이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장원철 암브로시오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의 간사의 공지를 끝으로 이날 미사는 모두 끝이 났다.

이렇게 '팔현의 친구들'은 결성됐고, 앞으로 미사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팔현습지 뭇 생명들을 대신한 이들의 목소리가 결국 팔현습지에 불고 있는 어리석은 탐욕의 삽질을 막아낼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 시간이었다. 팔현습지의 평화가 영원하기를 간절히 빌어본 시간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모두 함께 둘러서서 인사와 소감을 나누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이승렬 대표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나누었다.

"그동안 천주교에서 사회 참여적인 활동을 많이 해왔고 실지로 많은 힘을 줘왔는데 오늘 이곳 팔현습지에서도 미사가 봉헌되어서 무척 반갑고 기분이 좋다. 힘이 난다. 팔현습지와 수리부엉이 부부를 비롯한 많은 팔현의 생명들도 반가워하며 힘을 얻을 거 같다. 아울러 탐욕의 보도교 사업을 막아낼 큰 힘이 될 것도 같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특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팔현습지에 영원한 평화를!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에 함께한 이들이 함께 기념 촬영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에서 함께 모여 기념 촬영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시민들이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모습을 수리부엉이 부부가 지켜보고 있다. 아니 수리부엉이 부부가 미사에 함께 참여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팔현습지 지킴이를 자청하면서 금호강 팔현습지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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