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정부, ‘초주검 증시' 백기사로 나섰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김규환 2024. 1. 2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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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지수 작년 고점 대비 18.8%↓…증시 ‘빈사상태’
中, 지급준비율 전격 인하…1조 위안 규모 유동성 공급
증시안정화기금 긴급 투입 검토중…2조 위안 조성 예정
증시 침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불안정 확대방지 차원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24일 은행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0.5%포인트 전격 인하해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판궁성 인민은행장이 베이징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2일 중국 상하이(上海) 종합지수는 중국 경기 침체의 압박이 지속되며 개장부터 9포인트 내린 하락세로 출발했다. 오전 10시쯤 인민은행이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망매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속절없이 2800선도 무너지며 100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

화들짝 놀란 중국 정부가 이날 오후 리창(李强) 총리 주재 회의를 열고 시장신뢰를 위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서야 급락세가 겨우 진정됐다. 그렇지만 2756로 마감한 상하이지수는 2020년 4월 이후 3년 9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중국 정부가 결국 증시 부양을 위해 두 팔을 걷었다. 빈사 상태에 빠진 중국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수백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인민은행은 24일 은행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0.5%포인트 전격 인하해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내린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4개월 만이다. 판궁성(潘功勝) 인민은행장은 이날 “오는 2월5일부터 지준율을 0.5%포인트 인하한다”며 “이를 통해 시장에 1조 위안(약 186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강력한 자본통제를 시행 중인 만큼 개인이 해외로 자금을 반출해 투자하기 어렵다 보니, 중국에 상장된 일본 주식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들이 대안으로 인기를 끈다. 사진은 지난 9일 일본 도쿄의 한 증권사 닛케이225지수 시황판 앞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 AP/뉴시스

인민은행은 2022년 4월과 12월, 지난해 3월과 9월에 지준율을 0.25%포인트씩 내린 바 있다. 지준율은 중국의 은행이 예금 중 인민은행에 의무적으로 쌓아두어야 하는 현금 비중을 뜻한다. 지준율을 낮추면 은행이 시중에 풀 자금이 늘어나 유동성 공급효과를 내는 만큼, 지준율을 낮추는 것이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대표적인 통화완화 수단으로 꼽힌다.

시장은 일단 환호하는 분위기다. 지준율 인하 소식이 알려진 이후 상하이지수는 사흘 연속 상승세를 타며 150포인트나 올라 25일 2900선으로 올라섰다. 상하이·선전(深圳)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 300지수도 사흘 내리 오르며 3340선을 회복했다.

중국 정부는 증시안정화기금 투입도 준비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정부 당국자들은 2조 위안 규모의 ‘증시안정화기금’을 조성해 주식시장에 긴급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유기업의 역외계좌를 통해 기금을 조달해 본토 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사들이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함께 중국증권금융공사(CSFC)와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산하 중앙후이진(滙金)투자공사(CHI)가 펀드를 조성해 주식매입에 나서도록 독려할 방침이다. 펀드 규모는 3000억 위안 규모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직접적인 증시 투입 규모는 2조 3000억 위안을 넘을 전망이다.

지난 2020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자들이 주식 시황판을 주시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외국인들과 ‘스킨십’도 강화하고 있다. 한정(韓正) 국가 부주석은 22일 영국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마크 터커 회장과 만나 금융시장 현대화를 약속했다. 18일에는 허리펑(何立峰) 부총리가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사모펀드 워버그핀커스의 티머시 가이트너 회장과 회동해 중국 자본시장에 더 많이 참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뿐만 아니다. 23일 국가신문출판국이 게임업계에 대한 고강도 규제를 담은 '온라인게임 관리방법' 초안을 슬그머니 홈페이지에서 삭제해 규제완화 기대감도 나온다. 기관 투자자의 공매도를 제한한 것도, 국유 금융사인 중신(中信)증권은 규제당국의 비공식 명령인 창구지침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대여를 사실상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보험사와 연기금, 국부펀드를 포함한 국유기업들은 이미 지난주 초부터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에 나섰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벤(Z-Ben) 어드바이저스에 따르면 중국 최대 ETF 중 5개는 22일 모두 50억 달러(약 6조 6875억원)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 자료: 미국 마켓워치

중국이 증시안정화기금을 긴급 투입하기로 한 것은 증시 침체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불안정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더해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본 개인 투자자를 달래고, 증시를 이탈하는 외국인을 붙잡기 위한 긴급 대책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의 네오 왕 중국 리서치 담당 전무이사는 "주식 폭락에 대응하기 위해 무언가 준비된 것 같다"며 "2월 춘제(春節·설날) 연휴를 앞두고 주가 하락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상하이지수는 22일 현재 지난해 고점 대비 18.8%나 곤두박질쳤다. 중국 CSI 300지수도 지난해 11.4% 하락한데 이어 올 들어서도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6.2%나 더 떨어졌다. 해외자금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지난해 8월 이후 연말까지 1867억 위안 규모의 중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올들어서도 300억 위안 규모의 외국인 투자금이 중국을 이탈했다.

중국인들 역시 중국 증시를 탈출하는 ‘차이나런’(China run)이 일어나고 있다. WSJ에 따르면 22∼24일 자산운용사 화샤기금(華夏基金)의 일본 주식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순자산가치 대비 14∼20%가량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채 거래됐다. 해당 ETF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자 25일 한 시간 정도 거래를 중단했고 프리미엄은 5%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승세를 탄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ETF에 중국인 투자가 몰려 과열되자 당국이 일시적으로 거래를 막은 것이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한 이후에도 좀처럼 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소비자물가는 지난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중 패권경쟁 격화에 따른 정책 리스크 증가도 대중(對中)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하는 요인이다.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채권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시작으로 촉발된 부동산 시장 위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 자료: 미국 마켓워치

증시안정기금 2조 위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조성된 증안기금(8000억 위안)의 2배가 넘는 규모다. 과거에도 후이진투자를 활용해 펀드를 조성해 증시에 개입했다. 2018년 4월과 2023년 10월 증시가 고전할 때 펀드를 통해 주요 종목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번 증안기금 투입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조치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장기간에 걸친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고,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중국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는 2억 2000만명 정도로 그 비중은 전체의 99%에 이른다.

그러나 일각에선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허약한 상황에서 부양책을 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시 폭락세는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민간기업 통제와 중국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실망감 속에 투자자들이 이탈하면서 벌어진 일인 만큼 단발성 자금투입으로 증시가 구조적으로 반등할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중국 경제가 부채(debt)와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인구(demographics) 감소문제 등 ‘4D’라는 재앙에 직면했다는 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진단이다.

미 투자은행 BNY 멜론의 아닌다 미트라 아시아 거시 및 투자전략 책임자는 중국 주식이 매우 저렴해졌고 투자자들이 기대 이하 수준에서 소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 상승에는 놀랄 것이 없다며 "광범위한 개혁 패키지로 보완되지 않는 한 지속 가능성이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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