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큐전철은 왜 ‘여성 가극단’ 만들었을까 [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우리나라가 영화와 드라마, K팝의 전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문화력’은 해당 국가 경제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요. 최근에는 문화력 덕분에 경제가 더 성장하는 ‘후광 효과’도 입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문화력의 연관성을 증명한 유명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입니다.
이 가극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게 특징입니다. 도쿄가 아닌 오사카 북서쪽 효고현 다카라즈카를 거점으로 하는데요. 일본은 물론 해외 열성 팬들로 연일 매진 행진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북서쪽 밀양에 위치한 가극단 공연이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겁니다. 다카라즈카는 중학생 3학년부터 고등학생 2학년 여학생들 중에 인재를 선발해 직접 배우로 양성합니다. 이들의 소속사는 뜻밖에도 한큐(阪急)전철입니다. 오사카 북부와 고베, 다카라즈카, 교토를 연결하는 붉은팥 색깔의 클래식한 전철을 운영 중인 곳이죠. 실제로 배우를 그만두고 한큐전철 직원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런 독특한 구조는 역사적 사연이 있습니다.
한큐전철 설립자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가 시작한 첫 한큐전철 노선은 1910년 오사카 북부 중심지 우메다에서 다카라즈카시를 연결하는 구간이었습니다. 당시 북쪽 종점인 다카라즈카는 그저 허허벌판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승객 유치를 위해 종착역인 우메다역과 다카라즈카역에 각각 백화점을 세우고 다카라즈카역 일대에 온천 목욕탕을 짓고 주택 단지를 분양했습니다. 그런 후 놀이공원과 일본 최초의 실내외 수영장까지 갖춘 패밀리랜드를 오픈하는 등 아예 신도시를 개발합니다.
당시 주위에선 비웃었지만 관광객이 몰리고 열차를 기다리면서 쇼핑을 하게 돼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에 타 지역에도 철도와 백화점을 연계한 유통망이 생겨났는데요. 훗날 우리나라도 주요 기차 역내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는 계기가 됩니다.
조그마한 가극단, 거대 미디어그룹의 토대가 되다
하지만 호황을 누리던 패밀리랜드도 걱정이 있었으니 대규모 난방 문제였습니다. 기술이 안 돼 겨울만 되면 수영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에 이치조는 비어 있는 실내수영장을 공연장으로 활용하게 되고, 소녀들이 남성 역할까지 하는 뮤지컬로 관객을 모으고자 1913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설립합니다. 당시 패밀리랜드가 한큐전철 직속 운영이었기에 자연스레 배우들도 한큐전철 정직원이 된 것이죠.
이후 세월이 흘러 패밀리랜드는 문을 닫지만 가극단 인기는 날로 치솟았습니다. 이후 도쿄에도 전용 극장을 만들고 타 도시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느라 5개 팀을 운영 중입니다. 매해 초 5개 팀의 주연 배우가 선정되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죠. 그런데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각 팀의 새로운 공연은 무조건 효고현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시작한다는 원칙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을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토호주식회사는 영화 제작과 배급에 뛰어들어 이제는 일본 영화의 70%를 배급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같은 대성공에 크게 기뻐한 고바야시 이치조는 유언으로 “절대 야구단과 가극단은 팔지 말라”고 했다네요.
하지만 지난해 한 단원이 선배들의 집단 괴롭힘을 폭로했고, 가극단이 사실 무근이라고 회피하자 결국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모든 공연이 연말까지 중단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어떤 곳이든 창업자 정신이 꾸준히 지속되기란 쉽지만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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