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남자들은 왜 날고 싶어 할까 [유경희의 ‘연금술의 미술관’]
얼마 전 밤을 지새워 직진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모든 것(YOU)’. 드라마 여주인공은 크게 성공한 자기 아버지의 취미를 두고 비아냥거린다.
“남자들은 큰돈을 만지게 되면 왜 나는 것에 집착하나 몰라요?”
그렇다. 실제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이상 이룰 게 없을 정도로 성공하면 비행에 관심을 두는 남자들이 꽤 존재한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그리고 사업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던 하워드 휴즈(1905~1976년) 역시 그랬다. 20대 후반 나이에 일찌감치 재벌에 오른 일론 머스크는 이미 화성 등 우주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자기 생애 동안 인류가 화성에 착륙하지 않는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라며 ‘다행성 인류 되기 프로젝트’를 감행 중이다. 제프 베이조스 역시 2000년에 ‘블루오리진’이라는 민간 로켓 회사를 세워 민간 우주 개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비행으로서 이들보다 선구자 격인 존재는 하워드 휴즈다.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고아가 되면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휴즈는 15살 때 직접 비행기를 몰 수 있었고 이 경험을 계기로 비행에 푹 빠져들었다. 기업보다는 영화 제작과 항공공학자와 비행 조종사로 더 이름을 날린 휴즈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그가 영화 제작에 몰입한 것과 비행에 집착한 것은 동일한 근원을 갖고 있다. 바로 상처 입은 유년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다.
지나칠 정도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어머니는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몸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절대 안 되는 성격이었다. 그는 이런 강박증자 어머니의 과잉 보호 속에 친구도 거의 없이 외롭게 자랐다. 어머니의 이런 성격 때문에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렸어야 마땅할 편안하고 행복한 관계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 어머니의 훈육이 그대로 휴즈에게 함입됐고, 그 역시 불결함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진 중증 세균 공포증 환자가 됐다. 점점 더 영화와 비행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휴즈는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정신병적 강박증이 깊어졌다.
사실 영화와 비행에 대한 집착은 모두 상상계적인 대체물로, 결국 동일한 것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에서는 상상계를 ‘거울 단계’라고도 부르는데, 마치 거울을 보듯 유아와 어머니가 완벽하게 하나가 된 행복한 시기를 의미하며 인간은 모두 그 시절로 퇴행하고 싶어 한다. 아마도 휴즈는 그런 퇴행을 통해 결핍을 메우고 자신의 결여를 애도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비행에 관심이 있던 예술가는 누구였을까?
라이트 형제보다 500년 앞선 시대에 비행이라는 개념에 매료됐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가 있다.
다빈치는 박쥐 모양 날개를 단 자신의 비행기를 ‘우첼로(거대한 새)’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날개 밑에 매달린 사람이 두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고, 두 발로 페달을 밟아 약 200㎏의 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1496년 1월 3일경, 피렌체 근처 체체리 산에서 ‘우첼로’의 테스트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새처럼 날개를 퍼덕거림으로써 하늘을 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빈치는 대안으로 나선형 날개를 회전시키는 ‘헬리콥터’와 ‘낙하산’을 디자인했다. 다빈치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에 러시아 태생 항공기술자 이고리 시코르스키가 다빈치의 나선형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최초로 헬리콥터를 만들었다. 비행기와 낙하산 등도 500여년 뒤에 상용화됐다.
다빈치의 새에 대한 관심은 간단치 않다. 먼저 날개의 묘사가 압권인 작품이 있다. 스무 살 무렵 스승 베로키오의 도제에서 독립하자마자 만들어진 작품 ‘수태고지(1472~1475년)’가 그것이다. 그림 속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는 그가 얼마나 치밀한 관찰자인지, 비행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반영한다. 더불어 다빈치는 ‘성안나와 성모자상(1501~1519년)’이라는 작품 속 마리아의 치맛자락에 독수리를 숨겨놓음으로써 다시 한 번 자신이 얼마나 비행에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줬다.
다빈치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던 프로이트는, 이 독수리가 자웅동체인 이집트 모성신 무트(Mut)를 형상화한 것으로 아버지 없이 자웅동체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길 원했던 다빈치의 내면화된 무의식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나는 독수리에 대해서 깊은 흥미를 가질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왜냐하면 아주 어렸을 적, 요람에 누워 있을 때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와 꼬리로 나의 입을 열고 여러 번 그 꼬리로 내 입술을 친 일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다빈치의 이 말이 남성 동성애(펠라치오)의 알레고리적 표상이며, 서양 문화사에서 새는 성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천명했다. 어쨌거나 다빈치가 비상할 정도로 새와 비행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엄청난 재벌의 비행기 혹은 비행 사랑은 커다란 남근을 소유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남근은 ‘페니스(penis)’가 아닌 ‘팔루스(phallus)’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따르면, 팔루스는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원래 갖고 있었던 것인데 잃어버린 그 무엇’이다. 그러니 팔루스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그것은 삶을 지속시켜주는 역동으로서의 환상 대상(objet a)인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유년 시절 사내아이들은 오줌 누기 시합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자랑했다. 어쩌면 어른이 된 사내아이들은 페니스를 닮은 더 크고 강력한 ‘비행기-페니스’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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