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 입신양명... 이건 평범한 사람도 꿈꾸게 해주는 그림"
[글 최은정·사진 유승현]
▲ 강효진민화연구소에서 만난 강효진 작가(왼쪽)와 이민정 작가(오른쪽) |
ⓒ 유승현 포토디렉터 |
▲ 십장생(불로장생), 화조도(사랑과 행복), 모란도(부귀영화), 책가도(학문). 민화는 행복을 부르는 그림이다. 평범하지만 누구나 바라는 이상향을 자유롭게 그려낸 시대의 희로애락이다. 그 어느 때보다 상서로운 기운이 간절한 새해, 새삼스레 그 의미가 귀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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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에서 피어나는 희망
- 두 분의 용 그림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강효진: "큰 기운 얻어가시길 바랍니다(웃음). 여러분께도 '새해에 승천하는 용꿈 꾸세요!'라고 첫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용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존재입니다. 용은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일으키며 비, 천둥번개와 함께 장엄하게 비상하는 모습으로 그림과 설화에 자주 등장하죠.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이지만, '안 본 용은 그려도 본 뱀은 못 그린다'란 속담까지 생겨날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추앙받았습니다. 그 상징성이 여전히 유효하기에, 현대에도 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답니다."
- 민화를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예술'이라고 표현하던데요.
강효진: "민화의 태생에서 기인합니다. 조선 초 도화서 화원을 꿈꾸던 뭇사람(화공)들이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유롭게 화폭에 옮겼거든요. 백성 누구나 즐기고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어요. 때문에 작가적 상상력과 독창성이 발달합니다.
궁중화는 섬세하지만, 솜씨 좋은 일반인들의 그림에서는 자유분방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독창성은 오늘의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 1000년 전의 작품이 현대를 사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가 뭘까요?
이민정: "소망을 담은 그림이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요즘 말로 하면 '소확행'이랄까요. 상서로운 물상을 글자와 그림으로 조화롭게 그려낸 예술성도 뛰어나고요.
강효진: "민화는 꿈을 꾸게 해줍니다. 무병장수, 사랑과 행복, 다산, 입신양명 등 삶과 죽음 사이의 이상향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평범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꿈꾸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전통과 미래 통섭하다
▲ 전자기기에 도안을 스케치하는 제자. |
ⓒ 유승현 포토디렉터 |
- 두 분의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강효진: "제 그림의 뮤즈는 봉황입니다. 성군(聖君)이 출현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나타난다는 봉황. 조선 왕조는 봉황(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함)을 왕의 상징으로 삼고, 당대에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볼 수 없는 상상 속 동물이지만, 저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굳은 소망이자 선조들이 간직해온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창덕궁 부벽화(付壁畵)의 군봉도에서 처음 마주한 봉황은 고고한 자태를 한껏 뽐냈고, 화려함을 넘어 찬란했습니다.
이를 표현하고자 고민 끝에 금분과 금니로 장식미를 더했어요. 제가 첫 시도였죠. 2011년에 '조선왕조 봉황과 옥새'로 조선민화박물관 전국민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봉황 작가로 널리 알려졌어요."
이민정: "저는 '서수낙원도'로 지난 2022년 등단했어요. 그림에 정진한 지 4년 만이었죠. 지금은 '백수백복도'를 구상 중입니다. '수(壽)' 자와 '복(福)' 자를 여러 모양으로 도안하여 재구성해 조형미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제 그림은 누구나 만질 수 있는 입체적인 작품입니다. 민화의 대중화를 염두하며 저만의 세계를 고민하던 중, 어느날 전시장에서 그림을 만지려는 아이를 보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하게 됐어요.
오감으로 감상할 수 있고, 저시력자도 좋은 기운을 감각할 수 있는 그림이죠. 전통 민화와 디지털 민화를 접목해 작업해요. 디지털 도안을 그리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구현한 작품에 채색하는 방식입니다. 제 전시장에서는 마음껏 만지며 오감으로 느끼시길 바랍니다."
- 서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강효진: "이민정은 나에게 '한국 민화의 미래'다. 이 작가는 제자들 중에서 반항을 잘 하는 편에 속합니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뜻이죠. 이 작가가 입체적인 <백수백복도>를 기획했을 때 가슴이 뛰었습니다. 민화의 미래를 보았거든요."
▲ 붓을 든 스승. |
ⓒ 유승현 포토디렉터 |
▲ 그의 작품 '조선왕조 봉황과 옥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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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에서 피어난 꿈
민화를 향한 끝 모르는 열정으로 달려온 지난 세월, 인천의 민화 화단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강효진의 제자들이 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현대 민화를 풍성하게 꽃피우고 있다. 전시와 협업도 다채로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성과보다는 결핍을 고민한다.
- 최근 K-아트의 큰 줄기를 민화가 그려내고 있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강효진: "민화가 K-아트의 대표가 돼야 하고,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2015년 '강효진민화연구소'의 문을 열고, 2018년 인천민화협회를 설립하며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보다 체계적인 조직 운영과 후학 양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개인 작품 활동뿐 아니라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그 결과 많은 작가들이 한국의 민화 화단을 이끌고 있기에 보람을 느낍니다.
쉽지만은 않았어요. 인천은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인천 출신의 작가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인천만의 화단을 구축하고 발전시키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속에 고민과 간절함이 커지더군요.
인천만의 결핍을 극복하고 내공을 쌓은 훌륭한 작가들이 많습니다. 인천의 작가들이 시민들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두 분의 꿈이 궁금해집니다.
강효진: "인천민화협회를 시작할 때부터 제 꿈은 변함없이 '인천민화학교' 설립입니다. 10년 동안 노력하면 이뤄지리라 믿고 달려왔습니다. 프랑스에는 '에꼴'이라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학교가 많아요.
심도깊은 연구와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이 발전하려면 이러한 교육 기관이 필요해요. 지금 민화는 서울의 몇 개 특수대학원에만 학과가 개설돼 있어요. 인천에도 작가들의 배움터가 필요합니다. 인천에서 민화의 새 길을 내고 싶습니다."
이민정: "인천에서 민화의 인기가 높아지는 게 우선이고요!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 또한 민화의 대중화를 위해 놓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 이민정 작가의 '백수백복도' 도안 |
ⓒ 유승현 포토디렉터 |
- 장소: 인천광역시교육청 평생학습관 갤러리 나무
- 주최: 인천교사민화연구회
- 주관: 인천민화협회 강효진민화연구
▲ 강효진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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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 전공. 프랑스에서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다 입국해 민화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김삿갓문화제 전국민화공모전 대상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 지난 2018년 인천민화협회를 설립, 인천에 뿌리를 두고 민화의 지평을 넓힌 일등공신으로 프랑스 앙뎅파당전, 민수회 회원전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진행했다.
▲ 이민정 작가. |
ⓒ 유승현 포토디렉터 |
이민정(31)ㅣ민화 작가
법학과 졸업 후 2018년 민화에 입문, 4년 만에 제23회 조선민화박물관 전국민화공모전 장려상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23년 인천문화재단의 '청년동네탐구생활' 청년 작가로 선정, '손으로만 보세요'란 전시를 기획·진행. 누구나 소외받지 않고, 대중의 예술이었던 민화를 즐길 수 있는 세상를 꿈꾼다.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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