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잇·시놀…4050 홀린 모바일 서비스
장면 1. 김희선 화장품·미용 기기?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을 두고 하는 얘기다. 화장품·패션 회사 에이피알에서 전개하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배우 김희선 씨를 전격 기용, 화장품은 물론 집에서 쓸 수 있는 피부미용 기기를 광고하기 시작했는데 4050 여성에게 제대로 먹히면서 지금은 회사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가 됐다.
그 덕에 에이피알은 2022년 매출액 3977억원, 2023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은 3718억원을 기록, 연 환산 기준 전년 대비 24.65%나 뛰어올랐다. 지난해 말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고 올해 상장까지 노릴 정도가 됐다.
에이피알 관계자는 “자기 관리에 공을 들이는 4050 여성 대상으로 피부과에서나 받을 법한 미용 기기 시술을 집에서도 할 수 있게 차별화했더니 빠른 시간 내 관련 매출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며 “이전까지 2030 대상 화장품을 많이 전개했는데 4050 대상으로 확대하니 확실히 이 세대 구매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면 2. 2020년 중년 여성 대상 모바일 패션 플랫폼을 표방하며 출범한 ‘퀸잇’. 초창기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국내 중년 여성 브랜드 1800여개를 입점시키고 복종, 소재, 액세서리 등 카테고리별 검색, 찜하기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그랬더니 2023년까지 매년 평균 95%의 거래액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거래액은 3500억원에 달한다.
최희민 퀸잇(법인명 라포랩스) 대표는 “일반 포털 사이트에 ‘원피스’를 쳐봤는데 결과물이 2030세대가 입을 만한 브랜드 위주로 뜬다는 것을 봤다”며 “ ‘그렇다면 40대 이상은 어디서 옷을 살까?’라며 찾아봤는데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며 창업 이유를 밝혔다.
퀸잇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한 번도 거래액이 빠지지 않고 계속 성장해 투자업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는데도 지난해 7월 카카오벤처스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340억원을 투자했다. 누적 투자 금액만 700억원에 달한다.
792만명·869만명.
지난해 말 기준 통계청이 발표한 대한민국 인구 중 40대와 50대 숫자다. 전체 인구 약 5100만명 중 35% 가까이 차지한다. 그런데 그동안 IT 서비스, 플랫폼 회사 행보를 보면 이들만 딱 찍어 마케팅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고객, MZ세대 타깃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기 바빴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했다.
코로나19 이후 모바일 서비스 이용 연령대가 크게 높아졌다. 중년 이상의 디지털 기기 사용이 급증하면서다.
LG경영연구원 ‘향후 30년간 확대될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경제 활동 참가율은 65.8%까지 증가했으며, 4050세대는 물론 60대마저도 스마트폰 보유율이 90%를 넘어섰다.
컨설팅 업체 사이몬쿠처앤파트너스의 노정석 대표는 “IT 서비스의 경우 아무래도 얼리어답터 성격이 강한 젊은 층 대상으로 접근을 해야 빠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년층 관련 서비스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모바일에 눈뜬 중년층이 구매력까지 갖추고 있기에 쉬운 UX(사용자 환경), UI(사용자 경험)로 버티컬(특정 분야)·소비자에 직관적인 접근을 하면 퀸잇처럼 빠른 성장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풀이했다.
중년층 2057년 2030보다 1.7배 소비
생각보다 관련 시장도 크다.
통계청 잠재인구추계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의 인구는 2029년 전체 인구 중 24.7%를 차지하며 인구 비중의 정점을 찍는다. 왕성한 소비를 보이고 있는 또 다른 계층인 MZ세대와 비교할 때, 인구 비율이 2022년 기준 1.1배에서 2057년 2.1배까지 꾸준히 성장해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이 될 전망이다.
LG경영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액티브 시니어가 MZ세대보다 평균적으로 75%만을 소비한 반면, 최근(2023년)에는 85% 수준으로 올랐다고 집계됐다. 연령대별 1인당 소비 규모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돼도, 액티브 시니어의 전체 소비 지출 규모는 2057년 MZ세대 대비 1.7배에 이를 수 있다.
비단 45조원가량 되는 패션 시장만 봐도 4050 남성 모바일 패션 시장 규모는 약 5조원, 여성은 그 2배일 정도다.
최희민 대표는 “4050 여성 인구는 10대에 비해 180%가 더 많다. 또한 모바일 쇼핑 이용률이 2018년 60%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구도 더 많은데 모바일 이용률도 빠르게 증가하니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퀸잇 거래액 성장세가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데이팅 앱 ‘시놀’ 1년 안 돼 회원 수 2만
“중년 남성의 경우 이전에는 아내가 옷을 대신 사주는 경향이 많았지만 무신사를 통해 스스로 옷을 사는 남편이 많아지고, 결혼 나이가 늦어지며 40대 남성 미혼율은 18%로 20년 전 대비 7배 상승해 중년 남성 전용 패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중년 남성 전용몰 ‘댄블’을 운영하는 테일러타운의 김희수 대표 얘기다.
테일러타운처럼 중년 패션 앱 시장은 경쟁이 뜨겁고 성장세도 치열하다. 특히 댄블과 같이 중년 남성 타깃 앱으로 동반 상승하고 있는 앱으로 ‘애슬러(회사명 바인드)’가 있다.
김시화 바인드 대표는 “불과 5~10년 전까지만 해도 바깥일 하는 남자가 외모와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여진 반면, 최근에는 잘 가꾸고 깔끔한 남자가 대세가 됐다”며 “지난해 하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4배 성장, 일간 거래액도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바인드는 CJ ENM, 패스트벤처스, 앤파트너스, 디캠프 등에서 투자받으며 자본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패션 종합몰에서는 카카오스타일이 만든 ‘포스티’가 화제다. 명품, 골프 분야에 특화했고 파는 방식도 홈쇼핑 스타일 모바일 라이브커머스로 차별화했다. 2021년 7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앱 출시 2년 4개월 만에 앱 다운로드 수가 550만건을 돌파했다. 거래액도 2023년 누적 거래액이 전년 대비 150% 신장했다. 누적 리뷰 수는 1억건, 입점 브랜드 수도 2000개를 돌파했다.
비슷하게 4050 여성 대상 라이브커머스 앱을 만든 ‘퀸라이브’도 빠르게 뒤를 잇고 있다. 퀸라이브는 카카오스타일, 네이버카페 등을 통해 4050 패션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100만명을 관리하고 있던 윤정탁 대표가 만든 라이브커머스 앱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방송 가능한 앱을 만들고 4050 여성 소상공인이 이들 연배에 맞는 상품을 팔게 했더니 빠른 시간 내 매출이 발생했다.
윤정탁 대표는 “지난해 베타 서비스에서 해당 시간 선착순 입장 방식으로 라이브커머스를 선보였더니 오픈런(사전 기다림)이 생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며 “4050세대도 품질 좋고 합리적인 제품만 판매한다면 모바일에서도 충분히 구매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유독 패션 분야 4050 타깃 모바일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한동안 백화점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 4050 브랜드는 ‘올드’하다며 관련 매장을 계속 축소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매력 있는 잠재 고객 수요가 크다. 당연히 관련 서비스 출시가 급물살을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30세대 전유물로 여겨지던 모바일 데이팅 앱도 최근 중년 대상 앱이 급성장세다. 시니어 데이팅 앱 ‘시놀’이 대표 주자.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출신인 김민지 대표가 ‘왜 모바일 이성 만남을 젊은 사람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나’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창업했다. 지난해 3월 서비스를 시작하고 5월부터 유료화를 했는데 1년도 안 된 올해 1월 기준 회원 2만4000명을 돌파했다.
김 대표는 “중년층이 모바일로 데이트, 미팅을 잘하려나 우려도 많았지만 앱을 시작하자마자 고객 반응이 뜨거웠다”며 “커뮤니티 ‘모임’ 서비스는 첫달부터 200여개가 생성되는 등 긍정적인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꼭 데이트 목적이 아니어도 중년 타깃으로 취미, 여가 상품을 기획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도와주는 ‘오뉴’, 비슷한 취미를 가진 또래를 만날 수 있는 ‘오이’도 최근 각광받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참고로 오이는 45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게 해서 오히려 더 호응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중년 여성 특화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노는법(회사명 바바그라운드)’ 역시 빠르게 회원 수를 늘려가며 신용보증기금이 주관하는 ‘스타트업 네스트(Start-up NEST)’에 선정됐다.
숨은 수요 찾아야 승산
4050세대가 구매력도 있고 인구도 많아 나름 의미 있는 시장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이들을 겨냥한 시장에 뛰어든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30세대 창업자 중 상당수는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난항을 겪기도 했다.
노정석 대표는 “시장이 큰 것과 이들 세대의 틈새 수요를 파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며 “홈쇼핑 시장에 익숙한 중년층에 그런 스타일로 라이브커머스를 하니 성공하는 식이다. 4050세대의 오프라인 구매 경험과 유사한 모바일 접근성,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4호 (2024.01.24~2024.0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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