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광장들 중 가장 아름다운 곳, 단연 여기입니다
[김연순 기자]
세비야에도 스페인 광장이 있다. 이 스페인 광장에는 두 번 다녀왔다. 낮에 갔을 때 너무 더워 한 바퀴 훌쩍 둘러보고 돌아왔고 두 번째는 오후 늦게 가서 밤까지 있었다. 낮과 밤의 스페인 광장은 사뭇 다르다.
거리에는 카페들이 즐비해 있고 오후임에도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는 손님들이 카페에 가득하다. 가급적 그늘진 쪽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길가에 가로수로 높은 야자수들이 있는데 그 옆에 난생처음 보는 나무들이 함께 늘어서 있다. 나무가 온통 보라색이다. 전체가 보라색인 꽃나무는 처음이라 너무도 신기했다.
▲ '자카란다'라는 이름의 아프리카 벚나무 |
ⓒ 김연순 |
떨어진 꽃을 주워 들고 검색해 보았다. '자카란다'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벚나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주 보던 라일락도 보라색이긴 하지만, 크기가 비교가 안된다. 높고 커다란 나무에 온통 보라색꽃이 한가득 달려 있는 게 너무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 세비야의 스페인광장. 수로에 비친 건물의 데칼코마니 형상이 비경이다. |
ⓒ 김연순 |
이 광장은 스페인의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가 총책임자로 1913년 시작해 1916년에 완공되었다. 반원형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과 회랑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건물의 1층 벽면은 한 칸 한 칸 구획되어 있는데 각각의 공간은 다양한 색깔의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 세비야 스페인광장. 건물 1층에 각 도시의 역사적 사건을 아줄레주로 표현하고 있다. |
ⓒ 김연순 |
건물 안으로 들어가 회랑을 따라 걸었다. 길게 뻗은 회랑 자체가 넓기도 하다. 그늘이 있는 회랑의 한 공간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연주자들의 반주에 맞춰 젊은 여성 둘이 의상을 갖춰 입고 플라멩코를 춘다. 열 명 남짓 관객이 열정적으로 호응하고 있고 우리도 같이 앉아 박자를 맞춰 열심히 박수를 쳤다. 세비야 시내를 다니다 보면 플라멩코 의상을 파는 상점이 많이 보인다. 역시 스페인 남부는 플라멩코다.
▲ 수로가 보이는 세비야의 스페인광장 |
ⓒ 김연순 |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광장을 가로지른다. 이 광장에도, 세비야 시내에도 관광객을 태운 마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차 타는 것을 지양한다. 그 말의 운명이건 어쩌건 말을 채찍으로 때려가며 운행하는 마차를 타는 게 몹시 마음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연못 주변으로 아줄레주 장식의 벤치들이 있다. 한참을 걷고 나니 다리가 아프고 발목도 부어 있다. 이 벤치가 내 자리려니 하고 일단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엔 아예 누워 버렸다. 광장이 워낙 넓어 옆을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보면 좀 어떠랴 싶었다. 누우니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버스킹의 기타 선율이 귓가를 맴돈다. 지금 이 순간, 그 자체가 평화다.
▲ 분수가 있는 세비야 스페인광장의 야경 |
ⓒ 김연순 |
스페인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며 스페인 광장을 많이 보았지만, 우리는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을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밤늦도록 광장과 분수와 건물과 회랑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겼다. 그리곤 밤 열 시가 되어서야 광장을 나섰다.
▲ 세비야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현재 투우는 중단된 상태다. |
ⓒ 김연순 |
다음날 눈을 뜨니 오전부터 이미 덥다. 오늘은 그동안 알던 세비야와는 다른 모습을 보러 갔다. 바로 메트로폴 파라솔이다. 세비야는 역사와 문화유적 가득한 곳만은 아니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초현대식 건물로 세비야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부분적으로 보면 와플 모양인데 전체를 보면 마치 버섯을 닮았다고 해서 스페인 사람들은 라스 세타스(Las Setas)라고 부른다. 라스 세타스는 '버섯'이란 뜻이다.
▲ 버섯 모양의 메트로폴 파라솔 전경. |
ⓒ 김연순 |
우리는 입장권을 구매한 후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 오르니 세비야 시내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메트로폴 파라솔 건물 자체는 약 3,400여 개의 목재를 결합해 만들었다. 목재 한 장 한 장의 이음새를 살펴보며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부분을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전체를 보면 놀라운 건축물이다. 이어진 면과 면 사이로 빈 공간이 나타나는데 위치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여백이 있어 자유로운 호흡이 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커다랗게 휘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건물의 가장 높은 위치에 도착했다. 그런데 한쪽으로 유난히 사람들이 몰려 있다. 잠시 후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 방향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석양을 보려는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 있는 거다. 해 지는 서쪽을 향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장면을 보려는 사람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고 좀처럼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빠져나가면 다른 사람이 금세 그 자리를 채운다.
▲ 붉은빛 조명의 메트로폴 파라솔 |
ⓒ 김연순 |
그걸 보니 우리도 해 지는 장면을 정면에서 보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에 우리가 들어갈 빈자리가 생겼다. 얼른 들어갔다. 솔솔 부는 바람에 휴식을 취하며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하늘이 붉은색으로 그리고 보라색으로 물들어간다. 마침내 해가 지평선 너머로 쑥 내려갔다. 손톱만큼 남은 해가 사라지는 그 순간, 하나 둘 색색의 조명이 켜진다. 흰색의 나무 구조물은 붉은색에 이어 초록색 그리고 파란색과 보라색으로 차례차례 바뀐다. 어두워지는 밤하늘 아래 물 흐르듯 부드럽게 변하는 색색의 건물이 황홀경 그 자체다. 가히 세비야의 랜드마크로 불릴 만하다.
5월 초, 세비야 한낮의 기온은 36도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뚝뚝 흐른다. 가뜩이나 더위에 약한 나는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더위에 쉽사리 지쳤고, 무엇보다 조금만 많이 걸으면 부어오르는 발목 때문에 더 힘들었다. 밤마다 발목에 파스를 붙이고 냉찜질을 한 덕분에 그나마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세비야의 더위에 지쳐가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점점 더 활기차 보였다. 모로코에서도 그랬지만 세비야에서도 신나게 다닌다. 스페인은 더워야 제맛이라나? 호기심 요정이라도 합체되었는지 온갖 것을 다 궁금해한다. 부부가 이렇게 다르다.
세비야 거리 곳곳에서 간혹 피어오르는 지독한 냄새도 나를 힘들게 했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거리를 활보했고, 말이 수시로 쏟아내는 오줌 냄새가 바로 그 주범이다. 지금도 세비야를 떠올리면 고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역사문화의 도시라는 사실과 함께 지독한 말 오줌 냄새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런데 말 오줌 냄새 지독하긴 했어도 그립긴 하다.
▲ 해가 지고 난 후 메트로폴 파라솔 야경 |
ⓒ 김연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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