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할머니 돌보는 필리핀 엄마, 그 딸이 쓸 수밖에 없었던 책
[월간 옥이네]
우리는 꽤 자주 '큰 그림'에 취해 세세한 부분을 놓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풍요의 그림을 좇으면서도 이를 지탱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떠올리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12월 충북 옥천에서는 바로 그런 노동자의 얼굴을 그려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흔히 '노동자'의 표상으로 상상되는 '젊고/힘있는/남성' 노동자가 아니다. 이주를 통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여성 노동자, 그중에서도 '늙어감'과 '돌봄'을 함께하는 이주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지구화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어쩌면 이 세계를 가장 공고히 떠받치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 존재 말이다.
필리핀 출신으로 독일로 이주해 돌봄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그래픽노블(그림소설) <장거리 전화>로 담아낸 셰리 도밍고(독일) 작가가 옥천을 찾았다. 이 책의 한국 출판사인 문화온도 씨도씨(서울시 광진구 능동 소재, 대표 이제경)가 한국의 이주여성/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마련한 릴레이 북토크의 일환이다.
'옥천결혼이주여성협의회(회장 부티탄화)'와 '옥천이주민인권연대(회장 오오카도 미야코)'가 함께 한 이날 현장을 소개한다. 셰리 도밍고 작가와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추영롱(독일)씨의 통역으로 진행된 낭독회 후 도밍고 작가가 전한 집필 후일담, 그리고 옥천 이주여성들과의 대화를 정리했다.
▲ <장거리 전화>를 쓴 셰리 도밍고 작가가 북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월간 옥이네 |
책 <장거리 전화>는 독일의 한 노인요양원을 주된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돌봄노동을 하는 필리핀 출신의 여성, 그리고 그런 엄마를 따라 요양원에 온 어린 딸, 남편과 사별 후 자녀들에 의해 요양원에 맡겨진 여성노인의 이야기가 이 공간에서 교차하며 그려진다. 타국의 요양원에서 일하느라 정작 고국의 병든 어머니와는 함께할 수 없는 이주여성, 늙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으로 떠밀려와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노인의 이야기는 다른 듯 닮아있다. 우리 사회와도 상당 부분 겹쳐지는 장면이다.
"돌봄 노동, 나이 들어감, 이주... 워낙 제 마음에 깊이 녹아들었던 주제라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을 만들면서 이것이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새삼 깨달았고요."
고국인 필리핀을 떠나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일터에 방문했던 기억을 토대로 '반 자전적 이야기'를 썼다고 소개한 저자 셰리 도밍고씨는 "정치적으로 쓸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서 발견한 '이주/돌봄/나이 듦'이라는 정체성을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러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했던가. '장거리 전화'는 현실을 꿰뚫는 통찰을 건네며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됐다.
"1960~70년대 엄청나게 많은 간호사가 독일로 이주했어요. 필리핀에서도 마찬가지였죠. 한국에서도 대규모로 간호사들이 독일로 이주했고 그래서 저희 어머니에게도 한국인 간호사 동료가 많았습니다. 당시 독일은 간호사 등 돌봄 노동 인력이 워낙 부족해서 외국 노동자로 그 수요를 채우려 했던 건데요. '간호사 디아스포라'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국가에서 많은 수의 간호사가 독일로 넘어가게 됐죠."
도밍고씨는 이에 앞선 노동 이주의 첫 번째 물결로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진 남성 노동자 중심의 하와이 이주를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에 의해 수많은 필리핀 남성들이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플랜테이션)으로 노동 이주했던 것인데, 이는 비단 필리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1900년대 초 조선인의 노동 이주지 역시 하와이였다).
▲ 책 <장거리 전화> 앞표지 |
ⓒ 문화온도 씨도씨 |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난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의 노동으로 지탱된 서구 사회. 도밍고씨는 이를 '식민지적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자국 돌봄 노동·의료 인력에 대한 투자 없이 다른 나라(개발도상국)의 전문 인력을 그대로 데려와 바로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부국의 빈국 착취라는 것. 애초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 인적·물적·생태적 약탈 끝에 남은 결과가 '빈곤'이라는 점에서도 타당한 지적일 터. 더불어 이는 "굉장히 여성적인 이주(이주의 여성화)"라는 것도 문제다.
"간호사 디아스포라는 특히 미국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당시 미국은 자국 의료 인력 수급을 위해 필리핀 등지에서 수많은 간호사를 양성했고 이들을 미국 병원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무척 높았는데요. 가난한 나라에서 어렵게 돈을 모아 교육을 받는 구조이다 보니 이를 메우기 위해선 해외로 이주해 돈을 버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간호사, 의료 인력이 2차 세계대전 최전선에서 일했고요. 의료 시스템 자체가 식민지적 관습 속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돼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밍고씨에 따르면 '노동 이주'는 필리핀 역사에 있어 그 뿌리가 깊다. 스페인에 327년, 미국에 48년을 식민지배 당하며 오래 전부터 이들 국가의 노동력이 돼왔던 것이다. 이는 또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개발 담론과 지구화, 신자유주의 물결이 이어지면서 필리핀은 '세계 최대 노동력 수출국'이 됐다. 도밍고씨는 "필리핀 국민 10명 중 1명은 노동 이주를 하고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필리핀 국내 총 생산량의 1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동 이주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밀어내는(Push) 역할'이고 하나는 '당기는(Pull) 역할'입니다. 가난한 나라는 경제를 위해 부자 나라로 사람을 밀어내고, 부유한 나라는 저임금의 고된 노동을 할 인력을 다른 나라에서 끌어오는 거죠. 그런 역학관계가 노동 이주에 존재합니다."
▲ 사인 중인 셰리 도밍고 작가 |
ⓒ 월간 옥이네 |
도밍고씨는 <장거리 전화> 이전에도 증조외할머니와 어머니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독일에서 나고 자라 어머니 나라 필리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던 그이지만 어머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필리핀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는 도밍고씨. 그는 이런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거대 담론에서 노동 이주는 그저 수입과 수출의 관점으로만 보여집니다. 실제로 주류 미디어도 그런 식으로만 이야기를 하고요. 하지만 우리는 여기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압니다. 왜 노동 이주를 하는지, 이주노동자는 무엇을 갖고 이를 선택하는지, 이들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등 질문에 '사람'이 빠져 있다는 것을요. 사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각자가 가진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삶, 개인적인 얼굴들이 오는 것인데 말입니다. 어떤 거대한 담론에 맞서, 그런 큰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런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는 그의 손과 더불어 그의 일생이 함께 온다. 이 나라의 국민은 아니더라도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먹고, 축제를 열고, 마을과 사회에 어울려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이주노동자가 온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오는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손과 함께 삶과 꿈도 온다.
- 우춘희 <깻잎투쟁기> 중
도밍고씨는 이와 함께 이야기 하나를 더 덧붙였다. 간호사 디아스포라 시대, 독일로 간 한국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197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독일 정부는 더 이상 의료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며 이주노동자를 몰아내려 했습니다. 일방적인 추방 명령이었죠. 그때 활약했던 분들이 한국 출신 간호사들입니다. 조직적인 시위로 독일 정부에 항의했고 그 덕에 당시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독일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선례로 남아있지요."
석유파동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체류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는 독일 정부에 대한 파독 한인 간호사들의 시위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과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외국인법 시행을 끌어낸다. 이주노동자 역시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이주민 인권을 외쳤던 파독 한인 간호사, 어머니의 이야기로 이주여성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 셰리 도밍고 작가, 그리고 지금 우리 곁의 또 다른 이주여성. 제각기 다른 경험과 삶을 들여다볼 때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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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이 물었다,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어요" https://omn.kr/2785m
월간옥이네 통권 79호(2024년 1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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