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참가국 중 FIFA 랭킹 꼴찌가 기적의 16강 막차 탔다
[이준영 기자]
16강 진출 전망은 사실 어두웠다.
일본에 1-3으로 패하면서 인도네시아는 승점 3점, 득실차 마이너스 3점을 갖고 다른 조 3위 팀들과 우열을 가려야 했다. 이미 시리아, 팔레스타인, 요르단이 승점 4점으로 16강에 자리를 잡아놨다. 마지막 딱 하나 남은 자리. 카타르 현지시각으로 25일 키르기스스탄과 오만의 경기 결과에 따라 결정될 터였다.
인도네시아로서는 두 나라가 비겨서 승점 1점씩을 나란히 쌓는 데 그치거나, 키르기스스탄이 1점 차이로 승리하되 2골 이하를 득점(1-0 혹은 2-1 승리)해야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16강 방정식을 풀 듯 참으로 복잡한 경우의 수다. 두 나라 모두에 16강 가능성이 열려있어서 마지막 1분까지 치열한 승부가 예고되었다.
전반전 8분 만에 전력상 우세인 오만이 득점하면서 인도네시아의 16강 희망은 옅어만 갔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신태용호의 스태프 중 한 명은 카타르 현장에 취재 나온 현지 일간지 콤파스(Kompas) 기자에게, 후반전이 막 시작될 시간, 도하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고 한다. 기자는 끝까지 희망을 놓을 수 없다며, 경기장 분위기를 전하는 사진을 보내 대꾸했다고 한다.
기자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키르기스스탄의 유일한 흑인 선수 조엘 코조가 후반 35분에 동점 골에 성공시켰고, 추가 골을 얻으려는 양 팀의 열띤 공방전은 헛심으로 끝났다. 두 나라가 모두 탈락했고,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호텔 방에서 우승이라도 한 마냥 환성을 지르며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인도네시아가 16강 막차를 탔다.
5번 도전 끝에 사상 첫 조별리그 통과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 조별리그를 통과한 것은 이번이 신태용호가 처음이다. 인도네시아는 1996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 때 처음으로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아시안컵 본선 진출국 수가 12개였다. 4팀씩 3개 조로 조별리그를 치르고, 각 조 상위 2팀씩 6팀이 8강에 나간다. 그리고 조3위 세 팀이 우열을 가려 꼴찌 하나가 탈락했다. 본선 진출국 수가 지금의 딱 절반인 만큼 아시아의 쟁쟁한 강팀들만 본선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인도네시아는 개최국 UAE, 쿠웨이트, 대한민국과 한 조에 묶였는데, '한국 킬러'로 군림했던 중동의 강팀 쿠웨이트에 2:2로 비기고 대한민국에 2골을 넣으며 2-4로 아쉽게 패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UAE에는 0:2로 져서 1무 2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UAE, 쿠웨이트에 밀려 조 3위로 8강 막차를 탔었다.
2000년 레바논 대회 때도 인도네시아는 대한민국, 쿠웨이트를 또 만났다. 이번에는 UAE 대신 중국이 들어갔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4년 전보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았다. 중국에 0:4로, 대한민국에 0:3으로 완패했다. 쿠웨이트와는 0:0으로 비겼다. 같은 1무 2패이지만 내용이 달랐다.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쿠웨이트에 0:1로 져서 조 3위로 어렵게 8강에 올랐다.
다시 4년 후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인도네시아는 첫 경기 카타르를 제물로 아시안컵 첫 승리 감격을 맛봤다. 하지만 중국에 0:4로 완패하고, 바레인에 1:3으로 졌다. 조 3위를 했으나 8강 진출 기회는 없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본선 진출권이 16장으로 늘어나서 각 조 1위와 2위만 8강에 오를 수 있었다.
2007년 동남아시아 4개국 공동개최로 열렸던 대회가 조별리그 통과를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홈팀 인도네시아는 첫 경기 바레인을 2:1로 잡았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에 후반 막판 극장골을 얻어맞으며 1:2로 졌다. 바레인에 지면서 두 경기 승점 1점만 쌓아 탈락 위기에 몰렸던 대한민국이 인도네시아의 마지막 상대였다. 비기기만 해도 인도네시아가 8강에 오를 수 있었으나, 대한민국은 버거운 상대였다. 인도네시아 체육의 심장, 글로라 붕카르노 경기장을 9만 관중이 가득 메워 일방적인 응원을 보냈으나 인도네시아는 0:1로 졌다. 또다시 조 3위로 탈락했다.
"꼴찌의 조별리그 통과 없다"는 징크스도 날려
이후 인도네시아 축구는 나락을 걸으면서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축구협회 비리로 FIFA로부터 징계를 받아 A매치를 치를 수도 없게 되어 2019년 대회 때는 예선에도 못 나갔다. 당연히 FIFA 랭킹은 꼴찌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3년 12월 21일 기준 인도네시아의 FIFA 랭킹은 146등, 이번 아시안컵 본선 진출국 중 꼴찌다. 지금껏 아시안컵에서는 FIFA 랭킹이 가장 낮은 국가가 조별리그를 통과한 적이 없었는데, 인도네시아가 그 징크스를 깼다.
인도네시아는 28일 호주와의 16강 전을 앞두고 있다. 본선 진출권이 24개로 늘어난 아시안컵에서, 조 3위로 간신히 16등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신태용호의 성과가 지난 도전에서 거둔 것보다 작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준화되고 있는 아시아 축구 무대에서 조별리그에서 살아남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다. 한국도 두 번째 경기에서 요르단에 졌다면, 엄청난 압박 속에서 치러졌을 말레이시아전에서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인도네시아의 첫 조별리그 통과는 값진 결실이다. 이제 호주와의 사상 첫 8강 도전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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