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예고한 '노멀원' 클롭, 리버풀에 남긴 발자취

이준목 2024. 1. 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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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명장' 위르겐 클롭 감독이 올시즌 이후 리버풀 FC와의 작별을 선언했다. 리버풀 구단은 지난 1월 2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위르겐 클롭 감독이 2023-24시즌 종료 후 리버풀을 떠난다. 구단은 클롭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클롭 감독은 2025-26시즌까지 리버풀과 계약이 되어있었지만 구단과 합의하에 계약기간이 2년반이나 남은 상태에서 올시즌을 끝으로 계약을 조기종료하기로 했다. 사임은 클롭 감독이 구단에 먼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유는 오랜 감독직 수행으로 인한 '번아웃(에너지 고갈)' 때문이라고 밝혔다. '클롭 사단'으로 불리던 페핀 라인데르스 코치, 피터 크라비츠 코치, 비토르 마토스 코치 등도 클롭과 함께 올시즌이 끝난 후 리버풀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클롭 감독은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임 소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충격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나는 이 클럽과 도시, 서포터, 팀과 스태프들까지 모든 것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며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11월에 내 뜻을 클럽에 전했다. 다음 시즌을 계획해야할 때 머릿속에 구상이 그려지지 않았다"라고 마음속 깊은 고민의 흔적을 드러냈다.

이어 클롭은 "정말 떠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제 스스로 확신에 도달했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작별을 고할 수도 있었지만 구단이나 주변에서 영향을 받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너무 늦게 알리는 것보다는 일찍하는 것이 낫다라는 판단을 내렸다"라고 시즌중에 갑작스럽게 작별을 발표하게 된 데 양해를 구했다.

독일 출신의 클롭은 펩 과르디올라(맨체스터 시티)-디에고 시메오네(아틀레티코) 등과 더불어 21세기 현대축구계를 대표하는 전술가이자 명장으로 꼽힌다.

클롭은 현역 시절 모국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시절을 보냈고 특히 마인츠에서 무려 11시즌이나 활약했다. 하지만 그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만 해도 마인츠는 2부리그에 머물던 팀이었고, 클롭은 스타플레이어나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선수시절을 보냈다.

클롭은 2000-01시즌 도중 은퇴하여 곧바로 친정팀 마인츠의 감독직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의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초기에는 지도자 경험이 일천한 클롭에 대한 의문부호가 있었지만 차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시작하며 2003-04 시즌에는 3전 4기 만에 마인츠를 창단 첫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위업을 이뤄냈다. 마인츠는 2007년에 다시 강등 당했지만 이듬해 1부 재승격에 실패하며 클롭은 결국 사임했다. 하지만 중소구단인 마인츠에서 보여준 탁월한 지도력으로 유럽이 주목하는 젊은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2008년에는 독일 굴지의 명문 구단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부임하며 빅리그에서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를 지배하던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체제를 저지하고 2010-2011시즌과 2011-2012시즌 분데스리가 2연패와 포칼컵 더블, 2012-13시즌 16년 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준우승) 등의 업적을 이뤄내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이 시기에 이영표-지동원 등 한국인 선수들과 잠시 인연을 맺기도 했다.

2015년 10월, 도르트문트를 떠나 잠시 휴식을 취하던 클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리버풀의 러브콜을 받아 안필드(리버풀의 홈구장)에 입성하게 된다. 리버풀은 잉글랜드 전통의 명문이지만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로는 장기간 리그 무관에 그치며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맨유의 전성시대를 이끈 알렉스 퍼거슨의 은퇴 이후, 절대강자없이 첼시, 맨체스터 시티, 레스터 시티, 아스날, 토트넘 등 여러 팀들이 난립하던 춘추전국시대였다. 클롭이 독일을 떠나 타 리그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리버풀이 처음이었다.

클롭 감독은 리버풀에서의 첫 취임 인터뷰에서, '스페셜 원'을 자부하던 주제 무리뉴 전 첼시 감독과 비교하는 언론 앞에서, 자신을 '노멀 원(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유머감각와 겸손으로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멀원은 이후 클롭 감독을 대표하는 별명이 되었지만, 이후 그가 리버풀에 남긴 족적은 전혀 노멀하지 않았다.

클롭은 2019-20시즌 리버풀에 감격적인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선사한 것을 비롯하여, 2018-19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1회), 리그컵(EFL컵), 클럽 월드컵, UEFA 슈퍼컵, FA 커뮤니티 실드 등을 차례로 석권하며 8년간 총 6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리버풀은 클롭의 지휘 아래 다시 유럽을 대표하는 강호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클롭은 리버풀을 정상으로 이끈 업적을 인정받아 2019년과 2020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프리미어리그 시대 이전에 리버풀의 최전성기를 이끈 빌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같은 '명장들의 환생'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또한 동시대에서 함께 경쟁한 펩 과르디올라와 '세기의 라이벌리'는, 리그에서의 명승부와 더불어 현대축구의 전술적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분데스리가에서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 뮌헨, 클롭이 도르트문트의 수장을 맡아 치열한 지략싸움을 펼쳤고, 잉글랜드에서는 다시 맨시티와 리버풀의 감독으로서 각종 대회에서 용호상박의 우승경쟁을 이어갔다.

과르디올라가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한 점유율축구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면, 클롭은 이에 맞서 게겐프레싱(재압박)으로 대표되는 압박전술로 빠르게 공격권을 되찾아 역습을 가하는 전술을 추구했다. 묘하게도 두 감독은 축구 철학과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서로의 '안티테제'와 같은 인물이었고, 오랜시간 맞대결과 우승경쟁을 거듭하면서 전술 또한 나란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적인 우승 횟수면에서는 역시 과르디올라가 앞서고 있지만, 상대전적만 놓고보면 클롭이 11승 8무 10패로 근소하게나마 오히려 과르디올라를 앞선다. 과르디올라에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기록한 감독도 드물지만 두 자릿수 승리를 넘긴 감독은 클롭이 유일하다. 두 사람은 치열한 경쟁과는 별개로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통해 '선의의 라이벌'의 모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클롭은 리버풀에서 현재까지 통산 317경기 199승 74무 44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승점으로 환산하면 무려 671점에 이른다. 이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던 마인츠,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거둔 162승 84무 94패보다 크게 앞선다.

클롭은 그간의 커리어에서 보듯 24년에 이르는 긴 지도자 경력 동안 단 3팀만을 맡았다. 마인츠-도르트문트-리버풀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소 7년 이상 장기집권했고, 물러날 때도 경질된 적 없이 본인의 의지로 사임을 선택했다. 마음만 먹었다면 클롭이 리버풀에서 알렉스 퍼거슨(맨유, 27년)이나 아르센 벵거(아스널, 22년)같은 장수 감독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클롭도 프로 빅클럽 감독직이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라이벌 과르디올라 감독 역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르셀로나 감독시절인 2012년 재충전을 이유로 사임하며 1년간의 휴식기를 보내고 복귀하기도 했다.

클롭 역시 리버풀 감독에서 물러나는 것이 감독직을 은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며 향후 다른 나라의 리그나 국가대표팀을 맡아 축구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놨다. 축구팬들은 퍼거슨이 은퇴한 이후 맨유가 몰락했던 것처럼, 클롭이 떠난 이후 리버풀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다.

비록 클롭이 사임을 예고하기는 했지만 아직 올시즌은 길게 남아있다. 리버풀은 현재 14승 6무 1패로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리그컵(카라바오컵)은 결승에 진출했고, FA컵과 UEFA 유로파리그에서 살아남으며 최대 4개 대회에서 우승도전이 가능하다. 만일 유로파리그를 우승할 경우 클롭은 리버풀 소속으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이별을 앞둔 클롭이 마지막 시즌에 리버풀에 다시 우승을 안기며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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