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2명 덮친 표절 스캔들…'고학력'에 목매는 이 나라 뒤숭숭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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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정계가 논문 표절 스캔들에 흔들리고 있다. 이달 들어 장관 두 명이 석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한 명은 전격 사퇴했고 다른 한 명은 조사를 받고 있다. 이에 노르웨이에선 정치인들이 석사 학위에 목매는 '석사병(mastersyken)'이 만연한 결과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개탄하는 분위기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노르웨이 국영 TV와 현지 매체 E24에 따르면 지난 19일 산드라 보쉬 고등교육부 장관은 10년 전 쓴 석사 논문이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사과 후 전격 사임했다.
E24에 따르면 한 경영대학원 학생(27)이 SNS에 표절 사실을 처음 폭로하며 언론이 주목했다. 폭로자는 보쉬 장관이 오슬로대, 베르겐대 등에서 출간한 논문 2편의 여러 구절을 그대로 따왔다고 주장했다.
폭로가 나온 뒤, 보쉬는 성명을 통해 “10년 전쯤 석사 논문을 썼을 때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 “출처를 언급하지 않고 다른 논문 텍스트를 수집한 점, 정말 죄송하다”면서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정치인의 인간적인 잘못엔 관대한 편이나, 이번 건에 있어선 “교육부 장관이 논문을 표절하다니 실격이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어 21일에는 잉빌드 케르콜 보건부 장관이 2021년 제출한 석사 논문이 문제가 됐다. 다른 학생이 쓴 논문과 '현저한 유사성이 있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케르콜 장관은 처음엔 부인하다가, 일부 사실임을 인정했다. 케르콜 장관 건은 현재 조사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외신들은 정권 교체가 잦은 북유럽 특성상 정치인이 장관·국회의원직을 잃고 재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석·박사 학위가 중시되다 보니 논문을 표절하는 경우까지 나왔다고 분석했다.
현지 언론은 "노르웨이 사회가 워낙 고학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라 정치인도 석·박사 학위를 중시한다"면서 "정치가도 나중에 기업 등 미래에 재취업할 것을 대비해 석사 학위를 따놓으려다 탈이 났다"고 꼬집었다.
바쁜 정치 활동 중에 학위까지 챙기려다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매체들은 "스펙(경력)을 위한 대학원 진학은 학문적 정직함의 결여, 즉 표절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고등교육을 중시하는 신념이 변질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만 정치인 "오타도 같아" 사임…獨 국방 "카피베르크" 조롱
각국에선 논문표절 정치인에 단호하게 대처한 사례가 많다. 대만의 경우, 차이잉원 전 대만 총통의 신임을 받던 린즈젠 전 신주시장이 2022년 민진당의 타오위안시장 후보가 됐는데, 석사 학위 두 개가 표절 의혹에 휘말리면서 궁지에 몰렸다. "오타까지 똑같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린즈젠은 후보에서 물러났다.
독일에서는 2011년 논문 표절 논란으로 '스타 정치인'이던 칼-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당시 국방장관이 사임했다. 구텐베르크 전 장관은 과거 바이로이트 대학교에서 쓴 박사 논문에 표절 시비가 붙으며 2011년 3월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같은 달 하원의원직도 내놨다. 박사 논문 475쪽 중 100쪽 이상을 표절했단 의혹에 '카피베르크'나 '구글베르크'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美 하버드의대 논문 철회위기…"포토샵 흔적"
최근에도 전 세계 학계는 여전히 논문 표절·조작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험 데이터 조작 의혹이 제기된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들 논문이 무더기로 철회될 위기에 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하버드 의대의 암 연구 분야의 고위연구자 4명이 낸 논문 6편에 대한 철회 요청과 논문 31편에 대한 수정 요청이 학술지에 접수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분자생물학자 숄도 데이비드가 자신의 블로그에 "하버드 의대 교수 논문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논문의 실험 사진에서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 복사 흔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픽셀 단위까지 동일한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커지자 데이나 파버 암연구소가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이달 2일 하버드대에서는 첫 흑인 총장 기록을 세운 클로딘 게이 총장이 과거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진 사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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