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10만원"…문무대왕릉 앞 횟집들 전부 '굿당'이었다
지난 24일 오후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위치한 문무대왕릉. 이곳은 신라 문무왕 왕릉으로, 국가 지정 사적이자 세계에서 유일한 바다 위 수중왕릉으로 알려져있다.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해안가에는 횟집이 10여 곳 늘어서 있었다. 횟집이 늘어선 곳으로 다가갈수록 꽹과리와 징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횟집 몇 곳이 창밖으로 문무대왕릉이 보이게 만든 작은 방에서 굿을 하고 있었다. 제사상 위에는 과일과 술 같은 제수용품이 올려져 있었고 그 앞으로 연신 기도를 하는 이들이 보였다.
꽹과리·징 소리 울려 퍼지는 횟집들
문무대왕릉 인근 횟집은 일반적인 횟집으로 보기 어려웠다. 횟집마다 수조에 크고 작은 생선을 넣어두고는 있었지만, 횟집 안은 테이블이 없거나 조명이 꺼져 있었다. 또 횟집마다 ‘방생고기 팝니다’라고 적힌 입간판이나 안내판을 설치해 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도용품이나 오색천·조상옷 등을 판매한다고 적어둔 곳도 있었다. ‘방생고기’는 공덕을 쌓기 위해 바다에 풀어주는 활어를 뜻한다.
횟집에서 100여m 떨어진 바닷가 소나무숲에는 비닐하우스 형태의 불법 가건물 20여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건물 앞에는 쌀이나 정화수를 올려놓는 평상, 촛불을 넣어두는 철제 보관함도 설치됐다. 이 가건물은 모두 무속인이 설치한 굿당으로 보였다. 이 굿당은 5만~10만원 정도 받고 하룻밤 임대를 하거나 굿을 하는 용도로 쓴다.
바닷가에는 돗자리를 펴고 기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돗자리 위에 음식과 각종 제사용품을 올려놓고 문무대왕릉을 향해 연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속인들이 ‘사적지 내 무속 행위 금지’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은 아랑곳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해안가 ‘비닐하우스 굿당’ 수두룩
문무대왕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모(66)씨는 “문무대왕릉 근처에 무속인이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친다며 주변에 음식물을 버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며 “이곳에 ‘기도발’이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무속인이나 삶의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이 몰려들었고 일대에 일종의 ‘무속산업’이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광객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문무대왕릉을 처음 찾았다는 유지연(31)씨는 “경주 바닷가에 들른 김에 인근에 문무대왕릉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 바로 떠나기로 했다”며 “세계 유일 수중왕릉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골머리…“양성화” 주장도
관할 지자체인 경주시도 상시 단속을 펼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2020년 8월 경주시가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굿당을 모두 철거하는 과정에서 무속인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나마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자리에 금세 굿당이 잇달아 들어섰다. 문화재보호법 제99조 ‘무허가 행위 등의 죄’에 따르면 지정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무허가 행위를 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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