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사과하면 당한다"…용산 내부서도 '박근혜 트라우마'

박태인 2024. 1.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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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5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연설문 유출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사과를 반대하는 여권 인사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과를 재소환하고 있다. 일부 친윤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사과가 결국 탄핵을 촉발한 것”이란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친윤계인 이용 의원은 지난 21일 국민의힘 의원 단체 채팅방에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과해서 범죄가 기정사실화되고 탄핵까지 당한 것”이라며 “사과를 하는 순간 더불민주당은 들개들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등 당내 김 여사 사과 목소리가 커지자 반박한 것이다. 다음날인 22일 친윤계 핵심 이철규 의원도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왜 길거리에 나와서 교통사고를 당했냐고 책임을 묻는 것과 똑같은 케이스”라며 “사과라는 것은 불법이라든가 과오가 있을 때 사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 친윤계 의원으로 불리는 이용 국민의힘 의원(사진)은 김건희 여사 사과 불가론을 주장해왔다. 사진은 지난 9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공작게이트 진상조사단 7차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숩. 연합뉴스

대통령실 내에도 이같은 친윤계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섣부른 유감 표명이나 사과가 야당 공세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나 언론사 대담을 반대하는 참모들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 사건의 본질은 몰카 공작이며, 김 여사가 피해자라는 것”이라며 “사과를 하면 민주당은 ‘잘못을 인정했으니 처벌을 받으라’는 요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다른 참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과에 인색했던 것도 박 전 대통령이 무너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최서연(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한 JTBC의 첫 보도가 나간 다음날 1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최씨로부터)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 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는 “수석 등 주요 참모도 몰랐을 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진 사과”였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상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하지만 이 사과는 언론의 보도 경쟁을 촉발시켰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가 국정개입 의혹을 일부 인정한 꼴이 됐고, 각 언론사의 추종 보도가 쏟아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최씨의 국정농단 개입 의혹은 더 크게 확산됐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탄핵까지 당한 박 전 대통령은 더중앙플러스 회고록에서 “(사과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수였다”며 “각종 의혹에 대해 100% 인정한 것처럼 받아들여졌고, 민심은 순식간에 기울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김 여사 사건과 박 전 대통령 문제는 사안의 본질이 다르다는 반박도 만만찮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도 국정 운영을 하며 가족 문제로 수차례 사과를 했다”며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경우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전 대통령실 부대변인도 지난 24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의 사과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친윤계)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제대로 해명을 하지 않아 거짓 논란으로 번졌고, 그것이 위기가 된 것”이라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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