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히든카드 빼들었다…"CIA국장, 이·팔 휴전협상 곧 급파"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수일 내 가자지구 전쟁 해결을 위해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히든카드였던 번스 국장까지 급파하며 가자지구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동력을 보태려는 모양새다. 번스 국장 파견을 25일(현지시간) 단독 보도한 것은 워싱턴포스트(WP)다. WP는 "번스의 목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2개월 휴전 및 모든 서로의 포로를 석방하는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가정보원장을 국제 갈등 문제 해결에 파견하는 셈이다.
보도 근거는 다수의 익명 정부 관료로, WP는 "사태의 민감성 때문에 (소식통들이) 익명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국 행정부가 주요 정보를 자신들과 가까운 매체에 알려줄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번스 국장은 우선 가자지구 현장이 아닌 유럽으로 향한다고 WP는 전했다. 가자지구 관련 지정학적 헤게모니를 계산한 동선이다. 번스 국장은 이집트와 카타르의 핵심 관료들을 만나 해결책을 논의한다. 두 국가는 가자지구 관련 대화를 주도해왔다.
가자지구 전쟁은 지난 10월 발발한 뒤 해결에 이렇다 할 물꼬가 트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이 곧 2년이 되는 상황인 데다, 대만과 북한 도발 등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가자지구 전쟁의 장기화를 막겠다는 의지가 이번 번스 국장의 파견에서 읽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수차례 이스라엘 및 이집트ㆍ카타르 당국자들을 만났지만, 가자지구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번스는 바이든의 오랜 복심이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과 함께 CIA 국장으로 지명했을 정도로 백악관과 신뢰가 두텁다. 게다가 그는 원래 외교관이다. 국제 문제 권위지인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21년 "외교 거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무부에서 CIA 국장을 맡은 최초 사례로도 기록됐다. 국무부 차관을 맡았던 2010년엔 한국 기업의 이란 원유 수입 문제를 두고 해결책을 찾아준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는데, 한국 기업 중 이란에 원유 대금을 송금하는 것 역시 제재에 위반되는 상황이었다. 기업이 애꿎은 희생양이 될 차, 당시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은 방미해 번스를 만난 뒤 묘수를 냈다. 한국 기업이 이란에 직접 송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승인 하 국내 은행에 원화로 원유 대금을 결제하는 지불 시스템을 만들면서다.
그러나 이번 가자지구 전쟁은 제아무리 "외교 거인"이라 해도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번스 국장이 직접 비행기 트랩을 오른다는 건, 절망 속에서 희망의 조각을 발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섭의 희망이 있지 않다면 그가 굳이 직접 나설 의미와 필요가 없어서다. WP는 이집트 전 국방부 관료인 사미르 파라그를 인용해 "사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모두가 내심 평화를 원하고 있지만 협상에서 자신들만이 이기고 싶어하기에 실마리가 찾아지지 않는 상황"이라며 "번스 국장이 중간 지대를 찾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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