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5 vs MIG-23 맞짱, 결과는 거북선과 판옥선 대결 판박이 [Focus 인사이드]
그래도 대등했던 시기가 있었다
1950년 11월 1일, 압록강 부근에서 미국 공군 편대는 갑자기 등장한 공산군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았다. 순식간 1기의 F-51과 1기의 F-80이 격추됐을 만큼 낯선 전투기의 성능은 압도적이었다. 전투기 역사에서 동구권 제1세대 전투기를 대표하는 MiG-15의 충격적인 데뷔 모습이었다. 이를 상대하기 위해서 서둘러 한반도로 전개한 F-86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미국도 뛰어난 대항마를 보유하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무기사에 엄청난 쇼크로 각인된 이유는 사실 미국의 만용 때문이었다. 이미 소련은 승전기념식 같은 행사에 MiG-15를 선보였고 세계 최고의 전투기라고 대대적으로 선전까지 했었다. 분명히 미국은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소련의 기술력을 깔보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었다.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MiG-15를 몰고 귀순하는 이에게 최고의 보상을 공언했을 정도로 미국은 전전긍긍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후 소련은 미국에 맞서는 별도 규격의 전투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나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그 여파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정작 전투기 역사에서 소련(현재 러시아 포함)이 기술적으로 미국과 가장 대등했던 때가 바로 MiG-15 등장 당시였다. 이후 양국이 전투기 분야에서 벌인 경쟁은 겉으로는 마치 장군멍군처럼 치열하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소련이 미국을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1959년 미국이 F-4를 배치하며 제3세대 전투기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F-4는 소련의 제2세대 전투기인 MiG-17, MiG-21과의 대결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전과를 올렸다. 오히려 격추비가 한국전쟁 당시의 F-86보다 떨어졌다. 당연히 미국의 실망은 대단했지만, 사실 이는 F-4의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미국 스스로 능력을 제한해 버린 이상한 교전수칙과 작전 환경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반면 F-4에 성능에 놀란 소련은 서둘러 BVR(가시권 밖) 교전 능력을 갖춘 신예기 개발에 나섰고 1972년에 MiG-23을 배치하면서 제3세대 전투기 시대에 진입할 수 있었다. 무려 13년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었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전자ㆍ통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소련이 성능상으로 미국제 전투기와 충분히 맞설 수 있는 대항마를 내놓는데 갈수록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소련은 일단 배치부터 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식의 편법을 사용했다. 일종의 속임수였는데, 냉전 당시 미국도 허세를 부렸으나 소련은 정도가 과했다. 물론 소련은 체제의 우위를 주장하려고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 미국은 소련의 페인트모션에 속아 제대로 몰랐지만, 나중에 현실을 알게 된 뒤에도 의회에서 되도록 많은 예산을 따내고자 소련의 주장이 맞고 우리가 약하다고 엄살을 떨기도 했다.
좁히기 어려운 현실
그런데 소련이 힘들게 MiG-23을 데뷔시켰을 때 정작 미국은 F-15를 위시한 4세대 전투기의 배치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간신히 3세대 전투기 시대에 진입한 소련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미국을 쫓아가야 하는 신세였다. 당연히 소련은 이처럼 힘든 현실은 숨겼고 오히려 자신들이 미국보다 앞서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했다. 냉전 시대이기도 했지만 원래 무기 분야가 그런 경향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MiG-25다. 소련이 MiG-23과 비슷한 시기에 본토 방공용 요격기로 개발한 MiG-25는 마하 3의 고속으로 비행이 가능했다. 전투기 성능의 제1 지표가 속도였던 시절이어서 미국은 처음 MiG-25의 존재를 파악했을 때 심각한 위협으로 여겼다. 6ㆍ25 전쟁에서 MiG-15에게 호되게 당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F-4가 MiG-17, MiG-21 등에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기에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그러자 소련은 더욱 MiG-25의 공개를 삼가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을 택하고 NATO 방공망에 일부러 최고 속도를 노출해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다. 1976년에 빅토르 벨렌코가 망명할 때 몰고 온 MiG-25를 분석한 뒤 결코 우려할 성능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소련의 흑색선전은 막을 내렸지만, 직전까지만 해도 소련은 미국에 충분히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미국이 너무 수세적으로 나오다 보니 소련은 F-15가 데뷔해도 MiG-23, MiG-25 등으로 맞설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1982년 제5차 중동전쟁 중 벌어진 베카 계곡 공중전은 그런 희망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3일간 공중전에 이스라엘은 F-15 등 80여 기를, 시리아는 MiG-23을 비롯해 100여 기를 투입했다. 결과는 이스라엘은 1기의 F-4만 상실한 반면 시리아는 85기가 격추당했다.
한때는 E-2 조기경보기의 활약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투기의 성능 차이가 커서 벌어진 결과였다. 4세대 전투기는 한마디로 차원이 달랐다. 그동안 자신들이 앞선다고 자부하던 근접전 능력에서도 소련제 전투기들이 뒤졌다. 결국 소련은 1985년에 Su-27을 배치하면서 4세대 전투기 시대에 진입했으나, 마치 데자뷰처럼 이미 미국은 제5세대 전투기 사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미국은 2005년 F-22를 배치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어느덧 생산라인마저 폐쇄됐어도 F-22는 최강의 전투기로 자타가 공인할 정도다. 반면 F-22가 배치될 때 러시아는 5세대 전투기 사업을 시작했고, 2020년에 Su-57을 배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지금까지 전투기 분야에서 소련(러시아)이 보여준 행보는 고생스러워도 포기할 수 없는 이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제정 러시아 때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적대적인 반서방 의식이 여전한 이상 앞으로 다가올 6세대 전투기 시대에도 그런 도전과 응전의 패턴은 틀림없이 반복할 것이다. 20세기 말에 초강대국 소련이 무너지고 곧이어 러시아의 경제가 나락으로 치닫던 혼란기에도 무기와 관련해서는 보폭을 줄였을지언정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예상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정희 경호 보니, 이거 참…” 日재계 거물이 본 섬뜩 장면 (69) | 중앙일보
- 50대가 20대 피부 돌아갔다, 마침내 밝혀진 '노화의 비밀' | 중앙일보
- 쓰레기매립지서 나온 2900만원 돈다발…이 종이 덕분에 주인 찾았다 | 중앙일보
- '31대 0' 월드컵 꼴찌의 우승…트랜스젠더가 만든 기적 실화 | 중앙일보
- '영남 알프스' 비명 터졌다…한정판 '완등 기념' 은메달 뭐길래 | 중앙일보
- 클린스만호 8강 호주전 승리 확률은…통계업체의 충격 분석 | 중앙일보
- "아휴 싫어" 녹취에 유죄된 특수교사…주호민 아내는 흐느꼈다 | 중앙일보
- 결국 '있는 사람'이 결혼했다…신혼 42%가 연봉 7000만원 | 중앙일보
- "이게 마지막 인터뷰 될걸세" 주역 대가 김석진 옹의 마지막 | 중앙일보
- 험지 가거나 출마 접거나…그 정치인들의 묘한 공통점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