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욕망, 그 끝은 죽음… 남성 창극으로 재탄생한 ‘살로메’
국립창극단 2월 2~4일 공연
고선웅 각색, 김시화 첫 연출
성경 속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유대의 공주 살로메가 춤의 대가로 양아버지 헤로데왕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는 이야기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안에는 욕망, 광기, 잡착, 살인 등 인간의 어두운 요소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19세기 말이 되면 살로메의 인기는 절정에 달하게 된다. 사랑과 죽음에 집착하던 세기말 작가와 화가들이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로 살로메를 즐겨 다룬 것이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1893년 출판한 희곡 ‘살로메’는 성경보다 훨씬 잔혹하고 퇴폐적이다. 원래 성경에는 헤로디아 왕비가 딸을 사주해 요한의 참수를 요구했다고 간단히 나오지만, 와일드는 살로메가 요한에 매혹된 나머지 ‘일곱 베일의 춤’을 스스로 췄다고 풀어냈다. 여기에 살로메를 짝사랑하던 근위대장의 자살, 잘린 요한의 머리에 입맞추는 살로메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와일드의 ‘살로메’는 출판 이후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영국 등에서 한동안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1896년 파리 초연 이후 여러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가 대표적이다.
21세기 한국에서는 와일드의 ‘살로메’가 창극 버전으로 만들어진다. 바로 202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2월 2~4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남성 창극 ‘살로메’다. 그동안 연극 및 오페라로 ‘살로메’가 공연된 적 있지만, 창극 버전은 처음이다. 게다가 국립창극단 간판스타인 김준수 유태평양 김수인을 비롯해 남성 소리꾼들만 출연하는 남성 창극을 표방한 것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남성 창극 ‘살로메’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대본을 쓴 극작가가 지난 10년간 국립창극단의 전성시대를 이끈 창작자 중 한 명인 고선웅(서울시극단장)이기 때문이다. 고선웅은 국립창극단에서 ‘변강쇠 점찍고 옹녀’ ‘귀토’ 등의 히트작을 쓰고 연출한 바 있다.
근대 시대 창극의 등장 이래 여성국극이 한때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남성 창극은 유례가 없었다. 남성 창극이라는 대담한 시도를 이끈 것은 이번 작품의 연출가 김시화(35).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김시화는 그동안 전북도립국악원, 경기국악원, 국립무형유산원 등 전통 분야 국공립 예술단체의 안무와 무용 연출 및 방송국 사극 드라마의 안무감독 등으로 활동해왔다. 특히 국립창극단에서 고선웅의 ‘귀토’와 손진책의 ‘심청가’ 조연출로 참여한 바 있다.
김시화는 “판소리 관련 작업을 하면서 남성 소리꾼들의 힘찬 기세가 좋았다. 그래서 남성으로만 창극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면서 “고선웅 선생님께 남성 창극에 대한 상의를 드렸더니 ‘살로메’를 제안하셨다. 남성 창극 ‘살로메’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을 넓고 깊은 관점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선웅이 각색한 ‘살로메’는 와일드의 원작보다 훨씬 막장 드라마가 됐다. 왕비와 시동, 시동과 근위대장의 관계성이 더해지는 한편 극 중 캐릭터들이 모두 죽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고선웅은 “원작의 탐미적 비극성에 이끌렸지만 잔인함과 욕망의 이면을 넘어선 주제의 미덕을 찾아야 했다”면서 “공허한 삶을 살다가 충동적으로 삐져나오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집착이었고 그 극단의 선택이 죽음이라는 것을 관찰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고선웅과 김시화 외에 창작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작창 정은혜, 작곡 김현섭, 안무 신선호, 의상 이상봉, 음악감독 이아람 등이 참여한 것도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창극 연출로 화려하게 입봉하는 김시화는 “민간에서는 규모 있는 창극을 만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번 작품이 완성도를 인정받아 뮤지컬처럼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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