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대신 빗자루를 든 작가…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임세정 2024. 1. 2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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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정리는 평소에 늘 하던 일이다. 못 할 거 없다. 그런데 한 시간 반 동안 60개의 침대라니, 개당 1분 30초 꼴이다. 위 아래로 왔다갔다 하다 보면 허리와 어깨가 욱신거린다. 집에 돌아오면 팔이 덜덜 떨리는데 자면서도 떨린다."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는 '위스트르앙 부두'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비노쉬는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원작의 작가인 플로랑스 오브나를 오랫동안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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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비노쉬 섬세한 연기 돋보여
유명 작가 마리안(줄리엣 비노쉬)은 정체를 숨긴 채 노동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그들의 삶을 기록한다. 그들과 우정을 쌓을 수록 이중 생활은 괴로워지고, 사실을 털어놓으려 하지만 번번히 기회를 놓친다. 디오시네마 제공


“침대 정리는 평소에 늘 하던 일이다. 못 할 거 없다. 그런데 한 시간 반 동안 60개의 침대라니, 개당 1분 30초 꼴이다. 위 아래로 왔다갔다 하다 보면 허리와 어깨가 욱신거린다. 집에 돌아오면 팔이 덜덜 떨리는데 자면서도 떨린다.”

마리안(줄리엣 비노쉬)이 여객선 객실 청소를 하고 집에 돌아와 수첩에 적는다. 공중화장실 청소에 이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마리안은 사실 저명한 작가다. 경제 위기와 빈곤층,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캉으로 이주해 직접 노동 취약 계층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노동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마리안은 그들의 현실을 목격한다. 모멸감을 주는 고용주, 일상화된 부당 해고, 몸이 부서저라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빠듯한 생활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한다. 마리안은 청소부들과 우정을 쌓아가지만 이중 생활이 영원할 수는 없다. 괴로운 마음에 사실을 털어놓으려 하지만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는 ‘위스트르앙 부두’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분쟁지역 취재를 해 온 국제 문제 전문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가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직접 보고 경험하며 담아낸 것으로 실업자에서 시급 8유로의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돼 있다. 2010년 2월 출간된 이후 21만부가 팔려나가며 평단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주연을 맡은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칸 국제 영화제와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수상자다. 그는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로 르포르타주 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낸다. 비노쉬는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원작의 작가인 플로랑스 오브나를 오랫동안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출은 프랑스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인 엠마뉘엘 카레르가 맡았다. 1986년 발표한 데뷔작 ‘콧수염’으로 ‘문학의 천재’라는 찬사를 받은 카레르는 ‘겨울 아이’(1995)로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 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두 세계 사이에서’는 그가 16년 만에 각본가이자 감독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작가로서의 집요함은 영화에 사실감을 더한다.

영화는 지난해 칸 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에 선정된 데 이어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비노쉬는 제48회 세자르 영화제와 제28회 뤼미에르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31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12세 관람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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