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했던 청년사업가, 벼랑 끝에서 주님께 매달렸죠”
유독 책 읽기를 좋아하던 아홉 살 소년의 시선에 ‘앱 스토어’ 세상이 펼쳐졌다.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과 온라인 서점에서 앱 개발 서적을 구입해 독학하고선 컴퓨터 방과 후 수업 때 앱을 만들었다. 13살에 희귀 애완동물 수입 대행 쇼핑몰을 운영하고 17살에 시각장애 아동을 위해 물에 젖지 않는 점자책을 개발하더니, 19살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에 최연소로 선정됐다. 김민준(25·베이직교회) 어웨이크코퍼레이션 대표 이야기다.
투자업계의 조명을 받으며 일찌감치 ‘천재 사업가’ 수식어를 달았던 소년의 청년기는 또 다른 놀라움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 놀라움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하나님을 진하게 만나고 쉴 만한 물가가 필요한 이 시대 청년들을 ‘푸른 초장’으로 안내하게 된 기적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초원 AI’란 앱으로 10만여명의 이용자들의 일상 신앙화를 돕고 있는 김 대표를 지난 24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사하면서 오른 아파트값도 십일조로 내야 할까요’ ‘노아의 방주에는 사막여우도 들어갔을까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이지만 쉽게 묻지 못하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에 인공지능으로 답을 주는 플랫폼이 ‘초원’이다.
영혼 없는 응대로 일관하는 챗봇(chat bot)이나 본질을 벗어난 대답이나 비성경적 내용만 늘어놓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질문을 입력하자 질문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로 시작해 해당 고민을 비춰볼 수 있는 성경 구절과 의미, 심방 온 목사님의 기도 같은 기도문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초원의 주 사용자는 10~30대 크리스천이다. 서비스 시작 9개월여 만에 누적 62만개의 질문이 입력됐고 답변 페이지는 24일 현재 조회수 175만회를 넘겼다. 김 대표는 “인공지능은 우리 일상에 호흡과 같은 존재가 됐다”며 “바르게 성경을 학습하고 훈련된 인공지능이라면 분명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앱을 구동했을 때 첫 화면은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QT’이었다. 자연스럽게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돕는다. QT를 완료할 때마다 새싹이 나무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을 독려해보기도 하고, 연결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크리스천 이야기를 듣는다. 주제 키워드를 입력하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깔린 기도편지도 선물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초원의 전신이었던 ‘주님 AI’ 앱을 바탕으로 성경 검색, QT, 기도편지 선물 기능을 추가하면서 사용자 리텐션(앱을 설치한 뒤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 60%를 유지하고 있다. 당근마켓 앱보다 높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웃었다. AI 앱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응답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 주요 교단 신학자들로 구성된 신학 검수위원회가 가동돼 신학적 오류와 이단성을 걸러낸다. 지난해 7월에는 대한성서공회와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김 대표의 삶이 구김도 실패도 없이 타고난 천재성으로 승승장구해 온 ‘영리치’ 이야기였다면 오늘의 초원은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 “모태신앙으로 자라 미션스쿨을 다녔지만 껍데기만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투자 업계의 관심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교만함으로 가득한 시절을 보냈죠. 하지만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열아홉에 창업한 뷰티 회사가 의료법 문제에 휘말리면서 모든 직원을 해고하고 수억 원의 빚더미에 앉아야 했어요. 업계에선 사기꾼으로 낙인찍혔고 투자자 앞에선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때 한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으로 기도하게 됐던 게 전환점이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자 기적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왔다. 투자자들이 다시 기회를 주겠다며 연락해왔고 위기의 회사는 대기업에 인수되며 숨통이 트였다. 2020년엔 어웨이크코퍼레이션을 창립, 크리에이터를 위한 광고주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크리에이터리(creator.ly)’ 서비스로 날개를 달았다. 2년여 만에 기업 가치가 200억원까지 치솟았을 때 또 한 번 기로에 섰다.
“신기술과 새로운 트렌드를 활용해 투자자들에게 약을 파는 느낌이었습니다. 결단을 내리고 팀원들과 이야길 나눴습니다. 크리에이터리 서비스에서 배운 ‘큐레이션’과 ‘팬덤’을 활용해 다음으로 무엇을 해볼 지를요. 하나님이 최초이자 최고의 크리에이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초원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초원이 기독교 앱이 아니었다면 초대박을 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생각이 다르다. “그동안 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를 개발해왔습니다. 그런데 초원은 자기 삶을 변화시켜 문제 상황을 바로 바라보게 하는 서비스입니다.”
초원 운영에는 매달 수천만원이 들어가지만 1030세대가 주 이용층인 앱 특성상 아직 유료화 전환은 쉽지 않다. 주변에서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직원들과 회의하다 얘기해요. 우리 이번 달 망할 수도 있겠다고요. 다음 얘기는 이겁니다. 그렇다면 망하기 전에 어떤 서비스를 구현해야 후회가 없을까. 그렇게 몰입할 때마다 하나님이 회사 문 닫는 날을 연기시켜주시는 것 같아요. 하하.”
초원이 꿈꾸는 열매는 무엇일까. “다음세대 신앙 회복이 먼저예요. 초원이 그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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