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얼라이브] 사람 낚는 어부 ‘홍반장’… 바다 찾는 이들에게 평안한 쉼을
일명 ‘홍 반장’ 베드로 집사로 통하는 홍수명 집사는 1963년 부산 광복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경성대 미대 회화과를 나온 홍 집사는 생활한복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로 부산과 경남 지역 패션업계에서 시선을 끌었다. 90년대 초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올라와 본격적인 사업을 펼쳤다. 당시 ‘디자인 뱅크’로 대박을 터뜨렸다. 니트 등 의류 사업은 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한 배우 이재용이 홍보하고 판촉 활동을 나서는 등 서울 강남에서도 통했다. 패션잡지를 만들 때는 181㎝ 키의 훤칠한 훈남인 본인이 직접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청담동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던 2002년 어느 날 그에게 낚시 바람이 불어왔다. 평소 즐기던 갯바위 낚시를 위해 보름 휴가를 내고 거제도 일주 낚시 여행을 떠난 것이 화근이었다. 거제 곳곳을 돌며 낚시를 즐기던 홍 집사는 서울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엄마 품 같은 바다가 좋아 무작정 거제도 정착을 선택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업 호황기라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동에 갈빗집을 열었다. 서울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패션디자이너 15여년의 삶이 하루아침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바뀐 것이었다.
취미활동인 낚시는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지만 갈빗집 운영은 맘대로 되지 않았다. 가게 앞 자갈밭을 이용해 낮에는 세차장으로, 밤엔 재즈 음악을 틀며 꽤 성황을 이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시련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산다는 것에 대한 애착도 잃어버린 홍 집사는 옥포 고개에 올라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지만 목숨은 워낙 질겼다.
지난 21일 경남 거제 옥화마을에서 만난 그는 “작은 교회 목사님이 나를 구했다. 그 목사님이 내민 손을 잡은 게 큰 힘이 됐다”며 “삶을 포기하려던 사람이 제 발로 교회에 갔다”고 말했다. 처음엔 건성으로 다녔다고 한다. 앉으면 소주 2병을 마시고 두세 갑의 담배를 피우던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새신자반 6개월 과정 중 학습세례 단계에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세례를 받고 술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됐다. 손님을 상대로 전도 활동을 펼쳐 매주 1명씩 전도해 교회에서 전도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갈빗집이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갈수록 파리만 날렸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2011년 경남 양산 감림산기도원에 기도하러 간 것이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혹독한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말씀이었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서울 동대문으로, 강남에서 거제도로 ‘뺑뺑이’를 돈 것은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신 단련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홍 집사는 ‘하나님이 손을 내밀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기도원을 내려왔다. 다시 일어설 마음을 먹은 홍 집사는 지역 부동산개발업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패션 디자이너의 감성과 열정이 재기할 기회가 됐다. 사업 성공 후 선교사의 마음을 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홍 집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옥화마을에 정착하기로 했다.
미대 출신답게 사비를 들여 우중충했던 담벼락에 문어 등 벽화를 그려 넣으며 마을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포구 물양장에 어지럽게 나뒹구는 어구와 기자재 등은 파란색 컨테이너를 나열해 예술작품처럼 깔끔하게 정리했다.
마을 브랜드도 만들었다. 앞바다가 문어 집산지인 관계로 ‘문어 마을 옥화’로 정하고 마을 알리기에도 나섰다.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그의 이런 노력 덕에 각종 방송에 40여 차례나 소개되면서 마을 인지도는 쌓여갔다. 정착 후 그는 거제 바다를 즐기는 방법이 ‘보는 관광’에 그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즐기고 체험하는 관광’으로 바꾸기 위해 시행착오 끝에 2015년 ‘아이 러브 거제’라는 1박 2일 낚시 여행 상품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 중 선박을 가진 사람을 섭외해 낚싯배를 마련했다. 주력 상품으로 선상낚시, 해산물 바비큐, 1박 숙소, 조식까지 제공하는 ‘힐링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가족 모임이나 워크숍에 제격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예약이 제법 많아졌다. 외국인도 즐겨 찾고 있다. 이렇게 하면서 마을 자체가 유명 관광지로 거듭나게 됐다.
여기까지 오기엔 텃세와 반발도 극복해야 했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고향 자연 자원을 바탕으로 관광 사업을 하는 그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가기로 했다. 시작이 벽화였다. 친하게 지내는 주민들의 집 벽면부터 그림을 그렸다. 어선 물고기 해녀 등 바다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 동네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는 취지였다. 천혜의 자연을 소유한 마을에 방문객을 늘려 주민들에게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려는 마음뿐이었다.
해안가 청소를 위해 빗자루를 들고 다녔다. 포구로 떠밀려 온 쓰레기 치우기에는 늘 솔선수범했다. 마을 앞 해안 경계석은 무지개색으로 칠했다. 어촌계 사무실, 어구 보관창고 등으로 사용하던 부둣가 컨테이너를 맵핑해 어항 이미지를 개선했다. 마을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관광객은 부쩍 늘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마을 주민과 대소사를 함께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은 차츰 홍 집사를 달리 보게 됐고 친분도 쌓여갔다. 텃세를 부리던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2016년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마을 주민들은 그를 이장 선거에 추천했다. 선거는 놀랍게도 박빙의 승부였다. 결과는 1표 차이로 당선됐다. 마을 정착 5년 만에 외지인이 이장에 선출된 것이다. 홍 집사는 혹여 마을 민심이 갈라지지 않도록 코에 단내가 나도록 밤낮으로 헌신했다. 특히 옥화마을 미화 사업에 주력했다. 주민 숙원이던 버스 통행을 1년 만에 해결했으며 마을 브랜드로 ‘문어’를 개발해 ‘옥화하면 문어지’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마을 내 식당, 숙박시설, 볼거리 등에 안내판을 세우고 지자체 공모사업을 통해 마을 전체에 벽화를 그렸다. 또 다른 공모사업으로는 해안가 산책로도 설치했다. 해안가 위를 걷는 데크에 올라서면 절경의 거제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이면 이 산책로에 관광객들로 붐빈다. 자그마한 마을에 젊은이들도 차츰 유입되면서 애초 30명 남짓하던 원주민이 귀어자(歸漁者) 등으로 채워져 140여명이 됐다.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홍 집사는 40대 중반에 예수를 영접한 후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믿음 생활을 하면서 4개 교회 전도왕 타이틀을 놓친 적이 없다. 이제까지 지체장애인과 조현병 청년, 주지 승려 등 공개할 수 있는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 믿음 생활을 시작한 교회를 비롯해 새장승포교회, 하늘빛힐링교회를 거쳐 지금은 칠천도연구교회를 섬기고 있다.
홍 집사는 새해 비전으로 히브리어 ‘바라크’(축복하다·창 1:22) 말씀을 묵상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와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다.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형태의 고난과 어려움으로 난공불락의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그 고난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께 다가가면 ‘바라크’ 축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옥화마을 등 7개 마을을 상징하는 캐릭터 상품도 만든다. 티셔츠와 모자, 머그잔 등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굿즈도 생산할 계획이다. 9월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후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형상화한 그립톡도 제작 중이다. 그립톡은 유승환 작가의 드로잉을 활용한 것이다.
미자립교회 목회자와 선교사를 후원하고 자립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만들었다. 붕어빵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처럼 오병이어 기적을 기대하며 만든 게 바라크 캐릭터를 활용한 ‘문어빵’ 프랜차이즈이다.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사업으로 올봄 지세포에 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그는 사업으로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거제 사람들은 그를 홍 반장이라 부른다. 교회에선 ‘베드로 홍’ 혹은 ‘홍 전도사’로 통한다. 그는 초보 낚시꾼들이 바다 위에서 손맛을 느끼고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로 회를 뜨거나, 문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로 바비큐를 즐기고 밤바다를 보며 힐링하면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해산물 아침까지 해결하는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홍 집사가 진짜 하고픈 것은 거제 바다를 느끼며 힐링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거제를 찾는 사람들이 온갖 세파의 근심 걱정을 잊고 여유와 휴식을 찾길 권하면서, 동시에 그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사람 낚는 어부’로 사는 것이 그의 최고 사명이다.
거제=글·사진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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