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년 동안 나라 흔든 무리한 양승태 수사

2024. 1. 2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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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개입 직권남용 47개 혐의 “전부 무죄”


“부끄럽다” 목소리 높였던 김명수 반성해야


재판 지연 등 심각해진 사법부 정상화 시급


‘사법 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4년 11개월간 재판을 받아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제 핵심 쟁점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무죄가 선고됐다. 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 사태를 빚은 이번 수사를 두고 “사법부 적폐 청산”이라는 주장과 “정권 코드에 맞춘 무리한 수사”라는 반론이 맞서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과도한 수사였다는 1차 결론을 낸 셈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려 47개의 혐의를 적용했다. 어제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던 도중 이례적으로 휴정해야 할 정도였으니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얼마나 샅샅이 뒤졌는지 알 수 있다.

재판부는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장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일 뿐 재판에 개입해 직무 권한을 위법 부당하게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비롯해 각종 재판 과정에서 직무 권한을 남용한 혐의도 수긍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앞서 진행된 전·현직 판사 10명의 재판을 통해 예견된 결과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관들이 상고법원을 설치하기 위해 ‘재판 거래’를 했다는 혐의 등을 주장했으나 제대로 입증을 못 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만 일부 유죄가 인정됐을 뿐이다.

47개 혐의가 모두 무죄라는 판결 내용은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공범으로 기재된 권순일 전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징계 대상에서도 빠졌다. 반면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를 재판에 넘겨 보복 기소 논란을 일으켰다. 성 부장판사는 1, 2, 3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설사 ‘사법 농단’ 수사가 지나쳤다고 해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향상하는 계기가 됐다면 나름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러나 후임인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장악 의도를 의심케 할 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될 당시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했던 김 전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대거 요직에 발탁했다. ‘사법의 정치화’가 극심해졌다. 코드에 맞는 판사는 관례를 깨고 중요 재판부를 4년 간 맡는 일이 벌어졌다. 사법 농단을 맹비난하던 판사들이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청와대행도 잇따랐다. 김 전 대법원장이 후배 법관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국회의 판사 탄핵을 운운한 녹음 파일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심 지연을 개선하려 묘안을 짜냈다가 피고인이 됐다. 김 전 대법원장은 6년 동안 상고심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같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극심한 재판 지연 사태를 초래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오히려 후퇴했다.

이제 사법부는 두 전임자가 남긴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비록 직권남용 혐의를 벗었지만, 대법원이 정책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경우 얼마나 큰 파문을 초래하는지 일깨웠다. 김명수 코트는 법원의 위기를 사법부 장악의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가 국민에겐 고통을 안길 뿐이라는 교훈을 줬다. 법원은 두 전직 대법원장의 실패를 거울삼아 독립성을 확고히 지키면서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법부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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