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만으로 한끼 식사 된다…파리서 배운 그녀의 7종 코스 [쿠킹]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⑱ 엘라보레
“요리와 디저트의 경계 허물었다…맛과 멋, 양과 질 모두 잡은 디저트 한 상차림”
“프랑스어에 ‘엘라보레’(élaboré)라는 단어가 있어요.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뜻인데,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끝없이 변화하면서 완벽을 추구한다는 의미예요. 이곳을 찾는 모든 분에게 조금 더 나은 것을 드리고, 음식으로 오감을 다양하게 자극해 영감을 전하고 싶은 꿈을 담은 이름입니다.”
르 프레 카탈랑(Le Pré Catelan), 르 가브리엘(Le Gabriel), 레썽시엘(L’Essentiel) 등.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도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놓치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7년간 경험을 쌓은 셰프가 강남구 청담동에 ‘디저트’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7종류가 넘는 디저트로만 코스를 채워 전에 없이 독특한 한 끼 식사를 선보이는 주인공은 ‘엘라보레’의 김요솔(31) 셰프다.
그가 디저트 코스 레스토랑 ‘엘라보레’의 문을 연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디저트는 식사가 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기분 좋은 포만감을 선사하는 곳답게 요리와 디저트의 선명한 경계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고기를 먹었을 때의 배부른 느낌을 대체하기를 어렵겠지만, 어느 특별한 날, 하루의 한 끼 정도는 이렇게 특별한 음식들로 포만감을 느끼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어요. ‘익숙한 한국의 재료로도 이런 디저트를 만들 수 있구나’ ‘디저트도 이런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구나’라는 반응을 들을 때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김요솔 셰프의 말처럼, 엘라보레에서는 모든 디저트가 제각기 다른 당도, 산도, 식감, 온도를 지닌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작은 요리를 먹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무대의 총감독처럼 그가 설계한 리듬대로 디저트를 먹다 보면 질리거나 물릴 틈이 없이 서서히 배가 차오른다. 달콤한 디저트로만 배를 채웠을 때는 느끼기 어려웠던, 기분 좋고 충만한 만족감이다.
특히 클래식에 기초한 근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해석을 가미하는 음식은 편안하면서도 신선한 자극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밀푀유의 기본적인 형태는 지키되 연근을 활용해 한국의 색채를 더하거나, 허브와는 다른 색다른 풍미를 내기 위해 당귀와 방아를 이용하기도 한다. 프랑스 북부에서 흔히 먹는 빵인 팡 데피스(pain d'epices)에 한국적인 재료인 팥을 섞기도 한다.
김 셰프의 올해 목표는 역시나 ‘엘라보레’하는 것이라고. 마치 조각가와 예술가의 행위 예술을 보는 듯 셰프의 섬세한 플레이팅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오픈 키친의 장점을 활용해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이다.
EAT
으레 디저트라고 하면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빵과 과자나 케이크, 과일 등 다소 간단하거나 단순한 것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엘라보레의 디저트들은 단번에 ‘정성 가득한 요리’라는 인상을 준다. 하나의 메뉴는 갖가지 재료로 섬세하게 조형되고, 이들이 모여 구성된 코스에서는 다이닝과 다름없을 정도로 탄탄한 완결성과 리듬감이 느껴진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나뭇가지에 열린 탐스러운 열매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섯 종류의 아뮤즈 부쉬다. 한 입 거리의 작은 모양새가 무색할 정도로, 각각의 디저트는 시각적으로나, 맛으로나 세밀한 디테일이 살아 숨 쉰다. 마치 캐시미어처럼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컬리플라워 바닐라 타르트는 풍만하고 깊은 바닐라와 컬리플라워 크림의 풍미가 인상적이다. 화이트초콜릿 역시 평범치 않다. 카다멈으로 만든 초콜릿은 은은한 단맛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곶감 블루치즈 말이는 한국적인 색채와 더불어 계절의 감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곶감의 쫀득함과 짙은 농도의 달콤함은 블루치즈와 치아시드로 만든 사블레와 함께 빼어난 궁합을 보여준다. 안에 들어가 작은 잣은 고소함 속에 고소함을 한층 더하고, 씹는 재미까지 선사하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마치 김부각의 식감을 연상케 하는 매생이 녹차 크래커도 한국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듯하다. 식탁의 단골손님인 매생이와 감태는 익히는 과정을 거치며 쌉싸름한 풍미가 한껏 더해진다. 여기에 색과 풍미가 비슷한 녹차가 더해지며 쌉싸름함과 씁쓸함 사이 경계를 오가는 오묘한 맛을 선사한다.
세 종류의 다른 버섯을 활용해 만든 에끌레어도 흥미롭다. 양송이로 만든 도우 안에 능이버섯으로 만든 크림을 채우고, 새송이버섯으로 가니쉬를 마무리해 버섯이라는 식재료를 다채롭게 활용했다. 온갖 버섯이 뒤섞여 있지만 먹는 순간 구수함과 함께 땅과 흙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형형색색 각기 다른 아뮤즈 부쉬 뒤로는 따뜻하고 포근한 텍스처의 땅콩호박 마카다미아 수프가 진한 고소함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이처럼 김요솔 셰프는 뉘앙스가 닮아있는 재료들을 함께 사용하거나, 예상치 못한 재료의 조합으로 새롭고 맛의 레이어를 만들어 낸다. 익숙한 재료들을 이용해 창조하는 독창적인 음식들은 먹는 이에게 신선한 자극을 선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엘라보레의 시그니처와 같은 ‘쌀꽃’은 김 셰프의 장기가 한데 집중된 메뉴다. 소복하게 쌓인 첫눈에 첫발을 내딛듯 ‘바삭바삭’ 기분 좋은 소리를 자아내는 쌀꽃은 먹기 전부터 청각을 자극한다.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식재료인 쌀을 다양한 형태로 풀어낸 만큼, 맛 또한 실망시키지 않는다.
바삭한 머랭과 그 안에 들어간 겔은 각각 리치를 활용해 만들어 열대과일의 독특한 풍미를 살려냈다. 안을 채운 아이스크림은 쌀을 이용해 만들었고, 곳곳에는 마치 튀밥을 연상케 하는 쌀로 다시 한번 변주를 주었다. 쫀득한 쌀크림과 시원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씹을수록 올라오는 쌀 특유의 단맛도 좋지만, 혀끝을 떠나지 않는 구수함이 일품이다.
또 하나의 시그니처인 수플레는 디저트도 식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든든한 포만감을 선사한다. 구름에 떠 있는 듯 폭신폭신하면서도 포슬포슬한 수플레 안을 감자로 채워냈다. 수플레 위에는 돼지감자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소스를 얹었는데, 돼지감자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뿌리 내음이 묵직한 무게감을 더한다.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 식사에 한층 더 가까운 느낌을 주지만, 무엇보다 클래식한 수플레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 해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재밌다.
김성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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