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발렌틴 로엘만의 초록색 비밀 정원
발렌틴 로엘만(Valentin Loellmann)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 〈나무들〉에서 발췌한 말을 인용해 어린시절부터 쌓아온 녹색 식물과의 유대감을 고백했다. “나무들은 온 생명력을 다해 단 하나의 목적, 그들 안에 내재된 법칙을 깨닫고, 자신의 형태를 완벽하게 만들고, 자신이 대표하는 것을 추구해요. 아름답고 강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건 없죠." 바로 40세의 독일인 디자이너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나무들 사이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유다. 발렌틴은 2019년부터 삶의 기반을 마스트리히트로 옮겼다. 이 도시에서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며 공부하고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오래된 모자 공장을 홈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했다. 100평이 넘는 공간을 재설계하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유기적인 형태. 표면을 검게 그을린 참나무 의자와 테이블, 검게 변한 스틸 구조물 등 집 안을 이루는 가구와 램프는 발렌틴이 디자인한 것. 직선이나 대칭적인 요소가 전무한 공간의 팔레트는 음영이 느껴지는 검정과 회색, 녹 슨 갈색 등으로 이뤄져 자연광을 환하게 받는 흰색 벽과 대조를 이룬다.
발렌틴은 ‘와비사비(Wabi-sabi)’ 정신을 믿는다. “일본 철학인 ‘와비사비’는 물질적인 것에 무관심하고, 우아함과 엄격함을 추구해요.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미완성과 무상함, 불완전함이에요. 대기에 노출된 물체는 녹슬고, 갈라지고, 부식될 때 돋보이죠.” 맞춤형 주방과 마주한 자리에는 이 집의 백미인 내부 정원이 펼쳐진다. 예기치 않게 펼쳐지는, 나무로 가득한 공간이다. 큰 창문을 낸 거실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가면 두 개의 침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어린 딸 필리파(Filipa)를 위한 것이다. 두 침실을 잇는 복도에 있는 거대한 통창은 집의 내외부를 연결해 유연하게 공간을 확장한다. 이국적인 향기의 히비스커스, 프랜지파니, 계피나무가 어우러진 공간과 대나무 숲이 보이는 사우나도 인상적이다. 발렌틴 로엘만은 독일에서 태어나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u¨rttemberg) 농장에서 예술 활동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자연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성향이 강했다. 14세에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 작품 ‘모빌(Mobile)’을 갖고 싶어 했다. 그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발렌틴의 아버지는 그에게 복제품을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그의 집 정원에 걸려 있다. 발렌틴 로엘만은 최근 작업을 위해 옛 산업용 가스 저장 시설인 ‘가소미터(Gasometer)’를 구입했고, 가소미터가 있는 보테가 지역으로 스튜디오를 이전했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언젠가 발렌틴은 보테가 작업실로 삶의 터전을 옮길지도 모른다. 그에게 완벽했던 이 초록 섬은 또 다른 아티스트와 뮤지션의 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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